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고졸 채용을 사실상 중단했던 은행권이 앞다퉈 고졸 행원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고졸 채용붐은 공기업과 일반기업으로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학력 인플레를 완화해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는 측면에서 여론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임금과 승진 기회에서 차별을 낳는 등 고졸 채용 열풍 이면에 도사린 문제들이 간과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1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18개 은행이 2013년까지 전체 채용인원의 12% 수준인 2,720여명을 고졸인력으로 뽑기로 했다. 일정 할당량을 배정하는 쿼터제를 도입하는 것으로, 외환위기 전후로 고졸 채용이 거의 사라졌던 것과 비교하면 채용 규모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들 은행이 채용키로 한 고졸 행원들의 고용형태는 대부분 창구업무를 전담하는 2년짜리 계약직이다. 광주은행이 올해 고졸 10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뽑겠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정규직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2년 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면 고용이 보장된다고 강조한다. 무기계약직은 계약직(기간제 근로)과 정규직의 중간 형태로, 정해진 근로계약기간이 없어 고용 안정이 보장되는 고용 방식이다.
그러나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에 비해 임금·승진 체계 등에서 차이가 많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무기계약직의 경우 급여가 같은 직종 정규직 급여의 70~80% 수준이며 승진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게다가 2년 뒤 계약직 전원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것도 아니다. 모 은행은 지난해 계약직 800여명 가운데 100여명(약 12%)만 무기계약직으로 고용했다. 무기계약직 신분이 되면 전환고시라는 제도를 통해 정규직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정규직 전환 비율이 10%에도 못 미친다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결국 고졸 채용이 이벤트성의 보여주기 식 고용이며, 실질적으로는 출발선부터 대졸 신입직원과 차별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에 대해 은행들은 업무능력 파악을 위해서는 2년이라는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정규직으로 뽑을 경우 능력 미달 직원도 고용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고 말했다. 은행권의 고졸 채용이 한 순간의 '바람'으로 그칠 것이라는 일각의 지적도 이와 무관치 않다. 고학력 미취업자가 많은 상황에서 고졸 채용 쿼터제가 정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은행연합회에 준 향후 채용 계획은 말 그대로 계획일 뿐"이라며 "대부분이 대학을 가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에서 고졸에 쿼터를 준다는 것은 역차별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사실 지금은 '어!' 하는 사이 (고졸 채용 붐에) 이끌려 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때문에 고졸 행원도 정규직으로 뽑아야만 실질적인 학력 철폐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은 "업무능력 파악이 필요한 경우라면, 근로기준법 시행령 상에 규정된 3개월 수습근로 형태로 고용하고 나서 판단하면 된다"며 "창구 업무가 은행에서 필수적이고 단기간만 운영할 수 있는 직종이 아닌 만큼 정규직으로 뽑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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