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2년이 넘은 직장인 이모(34)씨. 아직까지 아이를 갖지 못한 그는 고민 끝에 부인과 함께 병원에서 불임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둘 다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이 씨는 "정확한 원인을 모르니 더 답답하다. 시험관 아기를 생각 중이다"고 했다.
불임은 피임하지 않는 부부가 1년 안에 임신에 성공하지 못했을 때를 말한다. 한국 부부 7쌍 중 1쌍이 불임이며, 이 비율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불임 여성은 배란이 안 되거나 난관이 막힌 경우가 많다. 남성은 정자를 아예 만들지 못하거나 정자 수가 적고 운동성이 약할 때 불임이 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정액 1㎖당 정자가 2,000만 마리 이하면 희소정자증이라고 판단한다. 건강한 남성의 정자 수는 보통 7,000만~9,000만 마리다. 전체 불임의 80%가 여성과 남성에 문제가 있어 생긴다.
나머지 20%는 이씨처럼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임신하지 못하는 경우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정자의 특정 유전자(DEFB126)에 이상이 생기면 정자에 이상이 없더라도 불임이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유전자는 정자의 표면을 둘러싸는 '외피 단백질'을 만든다. 외피 단백질은 정자가 점액질의 자궁 속을 잘 헤엄치도록 돕고, 면역반응을 피하게 한다. 이 단백질이 없는 정자는 헤엄을 잘 치지 못했다.
연구진은 "외피 단백질은 남성 불임의 중요 원인"이라며 "DEFB126 유전자 결함이 있는 정자에 외피 단백질을 넣어줬더니 정자가 정상으로 회복됐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의 자매지 '사이언스 병진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 20일자 표지논문으로 실렸다.
관동대 의대 제일병원 서주태 비뇨기과 교수는 "아직 임상적용까지 하려면 더 많은 실험이 따라야겠지만 이런 발견이 하나 둘 쌓이면 불임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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