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등단한 후 국내 대표급 작가로 사랑 받아온 은희경(52)씨가 지금껏 산문집을 내지 않은 것도 이상하지만, 그 오랜 망설임 끝에 최근 펴낸 산문집도 뜻밖이다.
<생각의 일요일들> (달 발행)은 덕지덕지 붙은 포스트잇, 쓰다 만 짧은 노트, 흐트러진 스크랩 등이 나뒹구는 어느 작업실의 나른한 풍경 같은 산문집이다. 아름다운 문장들의 정원이 아니라, 흡사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 들판에 들어선 기분이다. 그곳에서 조우하는 것은 한 작가의 날 것 그대로의 일상과 내면이다. 생각의>
21일 인사동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은씨는 "사적인 부분이 노출된 탓에 일기장을 공개하는 듯한 느낌이다. 독자들이 '뜻밖이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책에 담긴 글은 그가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문학동네 웹진에 <소년을 위로해줘> 를 연재하면서, 연재물마다 직접 달았던 댓글과 트위트에 올린 글들이다. '새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는, 반드시 하는 일이 글을 쓸 새로운 공간을 찾는 일과 손톱 깎기다'거나 '소설 쓸 때 방해되는 것들은 개그콘서트와 하이킥, 영화, 소풍 욕구, 타락 본능 등이다' 등 창작과정의 소소한 습관에서부터'슬픈 장면이 아닌데 슬프게 쓰고 말았다. 내가 슬픈 거다'는 심경 변화도 털어놓는다. '소설이 착안될 때는 어떤 장소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창작의 노하우와'소설을 쓰는 것은 결국 내 안에 있는 고통과 혼란과 변명과 독대하는 일'이라는 성찰까지, 이 작가의 내면을 스쳐 지나간 다양한 단상과 감정들이 가감없이 드러난다. 소년을>
은씨는 "책 낼 생각은 전혀 없이 모든 감각이 열린 상태에서 편안하게 쓴 글이다"며 '세미나 후 뒤풀이 때 하는 말' '장난스럽고 기분 좋게 만든 디저트' '힘들게 산에 올라간 후 그늘에서 경치를 보며 하는 말' 등에도 비유했다.
그는 "예전에는 글 쓰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조차 싫어했는데, 인터넷 연재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는 계기를 얻었다"며 "그간 여러 지면에 쓴 연재물 분량이 적지 않은데, 그것을 제쳐두고 이런 글로 산문집을 엮은 것도 나를 열겠다는 생각에서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트위트에도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는 은씨는 "삐딱한 글을 쓰면 오해의 소지가 있어 둥글둥글하게만 말하게 돼 '굳이 이걸 왜 쓰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그래도 트위터는 힘들고 외로울 때면 '힘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는 다정한 세계"라고 덧붙였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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