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없는 애플'을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애플을 빼고는 세계 IT시장을 얘기할 수 없고, 그 애플은 스티브 잡스 최고경영자(CEO)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게 현실. 하지만 1월 이후 잡스의 병가(病暇)가 길어지면서, 애플도 이제 서서히 '포스트 잡스'체제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애플의 이사진이 잡스의 후임자를 논의했다고 1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공식적인 후임자물색이 시작된 것은 아니고, 이사회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참여한 것도 아니지만 일부 이사들이 유명 IT업체 대표와 잡스의 후임 문제를 토론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잡스는 WSJ에 이메일을 보내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물론 당장 잡스가 유고상황에 처할 것 같지는 않다. 병가중임에도 불구, 그는 지난달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애플의 세계개발자회의(WWDC)에 참석해 아이클라우드 개발을 직접 발표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조차 그의 병색은 너무도 완연해 보여, 오히려 시장의 우려를 낳았다.
사실 애플에서 잡스의 위치는 다른 기업의 오너나 CEO와 차원이 다르다. 애플은 독립된 각 부서가 9명의 수석 부사장 지휘를 받는데, 각각의 업무가 분리돼 자기관할부서 외엔 모른다. 그러다 보니 애플의 2인자이자 현재 잡스를 대행하는 팀 쿡 최고운영책임자(COO)에게 재정상황을 묻거나, 피터 오펜하이머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 차기 아이폰 개발 계획을 묻는다면 "모른다"는 답만 나올 뿐이다. 애플의 모든 것을 챙기는 사람은 단 한 명, 잡스 뿐이다.
일각에선 "독단적이지만 잡스의 스타일 아니었다면 아이폰, 아이패드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애플의 모든 의사결정은 '톱100'으로 알려진 핵심멤버회의에서 결정되는데, 참석자는 2만5,000여명의 임직원 가운데 지위고하를 떠나 잡스가 직접 100명을 지목한다. 참석자들은 누구에게도 참석사실을 말할 수 없고, 달력에조차 표시할 수 없다. 심지어 잡스는 참석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자동차를 가져오지 말고 본사에 모여 회의장까지 버스로 이동할 것 ▦개최지에 골프장이 없을 것 ▦도청이나 해킹을 우려해 회의장에 모든 전자장비를 제거할 것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모인 100명 앞에서 잡스는 자신의 영감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중점사업계획을 직접 설명하는데,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가 여기서 탄생했다는 후문이다.
업계에선 이처럼 독특한 경영방식을 갖고 있는 애플에서 과연 잡스를 대신할 사람이 나올 수 있을지, 무엇보다 '괴벽'에 가까운 잡스의 경영스타일이 사라졌을 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공전의 히트작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빌 게이츠 없는 마이크로소프트(MS)는 가능해도 잡스 없는 애플은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현재 미국 내에선 "9명의 수석부사장 중에 후계자가 나올 것" "서열로 보면 팀 쿡 COO나 피터 오펜하이머 CFO가 유력하지만 이들은 결코 아닐 것" "후계자 역시 잡스만 안다"는 얘기만 무성하다.
한편 애플은 이날 경이적인 2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82% 늘어난 285억7,000만달러, 순이익은 무려 125%나 신장된 73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중국시장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3분기에도 좋은 실적이 나올 것"이라며 "잡스 없는 상황에서도 이렇게 높은 판매신장이 이뤄진다는 것은 의미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애플은 여전히 잡스의 왕국이다. 병가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잡스가 없는 상황이 왔을 때에도 계속 좋은 실적을 낼 수 있을지, 나아가 아이폰ㆍ아이패드 이후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시장은 여전히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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