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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모감주나무에 황금 꽃 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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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모감주나무에 황금 꽃 필 때

입력
2011.07.2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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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할아버지께 전해 받은 족보에 따르면 내 피는 延日(연일) 정(鄭)씨 28세손이다. 할아버지께선 연일 정씨를 영일, 오천 정씨라고 부른다는 것도 가르쳐주셨다. 포항의 지명인 영일, 오천이 시조인 習(습)자 明(명)자 할아버지의 계출(系出)지이기 때문이다.

어려서는 잘 몰랐으나 나이가 들면서 내 관심사가 피의 내력과 비슷한 사실을 알 때가 많았다. 시조 할아버지의 시 '패랭이꽃'(석죽화)이 그렇고 내가 좋아하는 모감주나무도 그렇다. 작렬하는 여름 햇살 아래 유유히 황금 꽃을 피우는 모감주나무를 나는 법열의 나무라 불렀다. 가을에 여무는 열매는 작고 단단하여 염주를 만들었다.

한참 경주 남산을 오를 때 즐겨 걷는 산길에 모감주나무를 심었는데, 노거수를 찾아 다니는 친구에게 들었다. 모감주나무는 학자목(學者木)으로 대접받아 연일 정씨 집안에서 자식이 살림날 때 모감주나무 묘목이나 씨앗을 함께 나눠줬다는 것이 아닌가. 경북지역 모감주나무 군락지가 연일 정씨 이주역사와 연관이 깊다는 말에 '이것이 피의 인연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내게 그런 이야기까지는 물려주지 않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신 산소 아래 모감주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벌초를 할 때마다 재종동생들에게 모감주나무에 대한 인연을 세세하게 들려주곤 한다. 바야흐로 모감주나무에 황금 꽃이 피는 계절이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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