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 11명이 최근 4년간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출제위원과 검토위원으로 참여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 결과 적발됨에 따라 수능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허술한 출제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올랐다. 최소한의 검증 절차도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입시 업무의 공정성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다.
19일 교육과학기술부와 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 문제 유출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밝혔다. 평가원 관계자는 "문제가 된 출제위원 2명 가운데 1명은 영어 과목 출제를 했으나 자녀가 유학을 선택해 수능 시험을 포기했고, 사회탐구 영역의 법과사회 과목을 출제한 나머지 1명의 자녀는 과학탐구를 선택해 유출 개연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9명의 검토위원도 출제된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합류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평가원은 서약서를 허위로 작성한 11명에 대해 향후 수능 출제 및 검토위원 인력풀에서 영구 제외하고, 향후 수능 및 모의평가 출제ㆍ검토위원은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 받아 수험생 자녀가 있는지 가리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교육계에선 평가원의 관리감독 능력에 의혹을 눈길을 보내고 있다. 2002년에는 수능 출제 본부 위치가 유출돼 보안에 허점이 드러났고, 2003년에는 참고서를 쓴 학원강사가 출제위원으로 참여해 논란이 됐었다.
한 입시관계자는 "수험생 학부모인 교사는 수능 시험 감독에서조차 배제되고, 얼마 전까지는 고3 담임교사도 시험감독을 맡지 않았다"며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수험생 학부모를 출제위원으로 참여시킨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각 대학에서도 수험생 자녀가 있는 교직원은 관련 서류를 제출 받아 입시 업무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이처럼 수능 관련 업무에 대한 전반적 관리 기준이 엄격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핵심인 출제위원 검증이 어처구니없이 허술했던 이유는 출제위원 선정과정이 특정 인맥에 좌우되는 등 폐쇄적이란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매년 수능 출제위원은 300여명, 검토위원은 190여명이 위촉된다. 출제위원의 경우 해당 전공 교수와 5년 이상 경력 고교 교사의 지원을 받아 인력풀에 등록하고, 평가원이 선발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 3년 이내 상업용 참고서를 펴낸 사람은 제외되며 3년 연속 수능 출제를 하면 다음해부터 출제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도록 해 경험을 갖춘 출제인력은 점점 줄어든다. 게다가 출제위원 선정도 특정 대학 인맥에 쏠리는 경우가 많아 출제위원의 선택폭이 좁아 진다. 한 교육 관계자는 "특정 대학 교수의 제자가 평가원의 실무담당자가 되면 다른 제자들이 대거 출제ㆍ검토위원으로 참여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감사원도 지난해 수능 경제 과목의 출제위원 4명이 모두 특정 대학 출신으로 구성되는 등 7개 과목 출제위원의 과반이 특정대학 출신이었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수능 출제위원으로 선정되면 합숙에 들어가기 2,3주 전 통보를 받는데 이 기간 중에 출제 경향이나 문제 유형이 유출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또 수능 출제위원들은 합숙 종료 때까지 수능 출제와 관련된 사항을 비밀로 하고, 수능 출제에 참여한 사실도 공개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3번 작성한다. 하지만 이를 위반하더라도 제재할 장치가 없다. 오히려 수능 출제에 참여한 많은 교사들은 참고서와 관련 서적을 펴낼 때 수능 출제 경력을 명시해 홍보하고 있으며 학원들도 이를 활용하지만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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