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보여드릴 게 뭐냐 하면요. 현대무용하고 연극을 합친 건데요. 고전무용이나 발레 같은 건 아니고, 음…. 아, 그냥 막 추는 거예요. 무슨 뜻일까 고민하지 마시고 그냥 즐기시면 돼요."
무대에 선 연출가 배요섭씨의 '막 춘다'는 말이 친근했는지 객석에서 "와"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공연은 유난히 설명이 많았다. 설명뿐이랴. 중간 중간에 드나드는 관객은 또 어찌나 많은지. 아기 업은 새댁이 빈 자리를 찾아 헤매자 중년 남성 몇 명은 뒷자리 관객은 생각지도 않고 동시에 벌떡 일어나 경쟁적으로 자리를 양보한다.
장마가 끝자락에 다다랐던 16일 강원 화천군 화천읍 신읍리. 지금은 폐교된 화천초등학교 신명분교 운동장에 세운 간이 무대에서 열린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제1회 텃밭 연극 축제는 '소박한 공연 축제'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활기가 넘쳤다.
2001년 창단한 공연창작집단 뛰다는 '노래하듯이, 햄릿' 등 오브제를 활용한 실험극으로 이름을 알린 극단이다. 이들은 창단 10년째를 맞은 지난해 화천에 창작 공간을 새로 마련했다. 시골마을 예술텃밭이라 이름 붙인 신명분교에서 창작과 배우 훈련을 하면서 지역민과 교류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위해서다. 전 단원이 거주지를 화천으로 옮겼다.
상업연극이 연극계 주류가 된 요즘, 극단은 '관객과 배우의 만남'이라는 연극의 본질을 찾길 원했다. 그래서 16일부터 3주간 매주 토요일에 여는 텃밭 연극 축제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부터 기획했다. 텃밭 연극 축제의 또 다른 목적은 각기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이 마음껏 땀 흘리며 몸과 몸으로 만나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트러스트 무용단과 인도의 전통극 배우 팔리니 무루간, 일본 배우 나카가와 레나 등이 함께 참여한다.
16일 첫 공연 현장에서 본 텃밭 연극 축제의 출발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극단이 트러스트 무용단과 같이 닷새간 워크숍을 거쳐 즉흥적으로 만든 두 작품을 선보이는 무대였다.
비록 무료 공연이지만 극단 측은 비를 피해 천막을 치고 70석 객석을 만들면서도 '과연 주민들이 찾아줄까' 고민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관객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120명에 달했고 백발 성성한 노인부터 엄마 품에 안긴 갓난아이까지 다양했다.
문화 소외 지역 화천의 문화적 잠재 수요는 실로 컸다. 신읍리와 이웃한 유촌리에서 온 장경희(33)씨는 "이런 공연을 접한 것도 오랜만이지만 무엇보다 멀리 가지 않고 이 지역에서 공연을 봐서 기쁘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뛰다의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PPP) 프로그램으로 공연 제작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목사 임희영(44)씨는 교회 신도들과 함께 공연장을 찾았다. "극단 뛰다를 통해 지역민이 문화와 친밀해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고 했다. 극단이 운영하는 주부연극교실 회원으로 30일 텃밭 연극 축제 무대에 오르는 김명희(57)씨는 "연극에 참여하면서 간혹 느꼈던 우울함이 싹 해소됐고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새로운 꿈에 눈뜨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다른 주부연극교실 회원들과 함께 절편을 만들어 와 관객과 공연자들에게 대접했다.
극단 프로듀서 김덕희씨는 "문화 소비의 대상이 아닌 일상의 삶을 풍요하게 만드는 연극을 하고 싶었다"며 "완성된 형태가 아닌 예술가들의 창작 과정을 중간에 발표하는 형식의 공연인데도 지역민들이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흥미롭게 지켜봐 줘 창작자들로서도 좋은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화천=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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