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정년 퇴임 앞둔 문학평론가 김인환·오생근 교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년 퇴임 앞둔 문학평론가 김인환·오생근 교수

입력
2011.07.19 10:25
0 0

30여년 강단과 문학현장에서 왕성한 연구와 비평 활동을 펼쳐왔던 두 문학평론가가 8월 나란히 정년 퇴임을 맞는다. 오생근(65) 서울대 불문과 교수와 김인환(65) 고려대 국문과 교수.

1946년생 동갑내기로 대학 졸업을 전후해 평론가로 등단한 이들은 김현 선생의 소개로 인연을 맺어 40년 가까이 우정을 나눈 벗이다. 첫눈에 봐도 보스형과 선비형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스타일, 불문학자와 국문학자라는 이들의 간극을 메워준 것은 문학과 삶에 대한 순정한 열정과 고민일 터이다. 초현실주의 연구자이자 미셸 푸코를 국내 본격적으로 소개한 오 교수나,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서 주역과 동학까지 동서양사상을 넘나든 김 교수 모두 폭 넓은 사상적 주유를 거름 삼은 탄탄한 토양에서 저만의 섬세하면서도 우직한 비평적 세계를 펼쳐왔다. 어느 글에서 김 교수는 오 교수를 “속됨을 견딜망정 거짓은 감히 못하는 사람으로 사려 깊은 순수성이 있다”고 했고, 오 교수는 김 교수에 대해 “그처럼 많은 지식을 소유한 사람을 잘 알지 못한다”며 “올곧고 유연한 사람으로 그와 만난 시간들은 언제나 즐겁고 빛나고 풍성했다”고 적었다.

15일 이들을 만나 지난 세월의 소회와 문학에 대한 변치 않는 고민을 들었다. 최근 대한민국학술원상을 수상한 오 교수는 “마라톤 골인 지점에 들어온 것 같은 홀가분한 기분이다”고 했고, 김 교수도 “30여년의 숙제에서 해방되는 기분”이라고 입을 열었다.

-30여년의 강단 생활을 되돌아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어떤 것인가.

오생근=“1995년부터 4년간 학내 대학신문 주간을 했는데, 그 때 학생기자들과 많이 싸웠다. 한 자리에서 대여섯 시간 논쟁을 벌이기도 하며 늘 갈등을 겪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당시 학생기자 20여명이 모여 내 정년을 축하해줬다. 선물에다 공연도 해주고 ‘스승의 은혜’ 노래까지 부르더라.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학교에서도 학부생들과 대학원생들이 종강 파티에서 ‘스승의 은혜’를 불렀는데, 한 달에 세 번 그 노래를 들은 거다.(웃음) 요즘에 그런 노래를 누가 부르나. 너무나 행복하게 퇴임하는구나 싶었다.”

김인환=“나도 1980년대에 학내 신문사 주간을 했는데, 당시 학생들과는 지금도 일년에 한번씩 모인다. 신문이 배포 금지 당하던 어려운 때였는데, 학생들과 늘 싸웠어도 밑바닥에선 서로 걱정하는 동지의식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학생이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인데, 선생 정년 퇴임한다고 얼마 전에도 찾아와 밤새 술을 마셨다. 운동권 학생들과 논쟁을 하면서 어떤 면에서 배운 것도 많다. 나는 을 책으로만 읽었는데, 학생들이 현실에서 노동문제로 시위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념이 현실이 되는 과정을 눈으로 보고 체험한 것이다. 그들과의 관계가 늘 현실에 대한 긴장감을 잃지 않게 했다.”

-학문 활동을 돌아보면 어떤가. 가장 보람된 일을 꼽는다면.

오=“내가 초현실주의를 전공하게 된 것은 폴 엘뤼아르의 시 때문이었다. 군대 시절 읽은 그의 시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과 용기, 자유의 정신을 얻었다. 지난해 말 초현실주의를 정면으로 접근한 책을 내서 나름대로 정리한 기분이고, 그 책으로 학술원상까지 받게 돼 영광이다. 미셸 푸코에 대해서도 조만간 학술적으로 정리하는 책을 낼 계획이다. 프랑스 유학시절 이런 사상가를 국내에 꼭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귀국 후인 1984년에 쓴 권력과 지식에 대한 글은 아마 푸코에 대한 첫 소개였지 싶다. 번역한 은 지금도 1년에 두 번 인세가 들어올 정도로 장기 베스트셀러다.(웃음)”

-푸코의 사상이 우리 지식사회에 미친 영향이 크지만, 대안 부재란 점에서 부정적 평가도 없지 않다.

오=“푸코의 사상은 지금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 해준다. 정보 사회가 발전해 편리함을 누릴수록 반대급부로 자유가 축소되고 제한된다는 사실이다. 정보 사회는 고도의 기록 사회인데, 개인에 대한 기록이 광범위하게 쌓일 수록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다. 일례로 내가 대학 갈 때인 60년대는 아무리 문제 학생이더라도 마음잡고 공부하면 대학 갈 수 있었다.(실제 오 교수는 학창 시절 문제아였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그렇지 못하다. 개인을 심사하는 자료가 점점 더 정교화하고 시기도 더 앞당겨진다. 하지만 그 정보라는 게 전혀 객관적이지 않다. 교사가 학생의 수업태도를 평가할 땐 자의적 판단이 계속 개입한다. 주관적인 평가가 기록이 되면 마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정보인양 착각하게 된다. 학생들이 어린 시절부터 누적되는 그 기록 속에서 점점 더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입학사정관제로 봉사활동 등도 점수화한다는 데 이런 게 과연 한 인간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옛날에는 안기부가 중요 인사들만 정보 관리를 했는데, 지금은 온 국민의 정보가 기록화하고 있다. 특히 이런 정보 관리 시스템은 국가 중심이 아니라 도처에서 무차별적으로 작동한다. 보통 때는 안 드러나지만, 한 개인이 약간이라도 사회 질서에 어긋나거나 약한 존재가 되면 그를 공격하는 데 이용된다.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관계가 예전에는 분명했지만, 지금은 기록을 통해 모두가 모두를 도처에서 감시하는 시스템이다. 푸코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김 교수는 국문학자로서 주역 번역까지 했는데.

김=“우리는 모두 마르크스 이후의 역사를 살고 있다. 마르크스를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대로 따를 수도 없고. 대학 시절인 60년대 전세계적으로도 학생 시위가 퍼졌는데, 당시 마르크스, 마오쩌둥, 마르쿠제를 ‘3M’이라 불렀다. 그 관심으로 마르쿠제의 도 번역했다. 우리의 지성사를 보면서는 동학에 주목하게 됐다. 동학이 신분질서에 대한 최초의 비판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계몽주의라고 여겼다. 동학의 사상적 근거가 주역이어서 공들여 번역했다.(그간 통용된 주역 번역의 틀을 깬 것으로 최고의 번역이란 평가를 받았다. 김 교수는 주역을 한편의 장편시로 읽을 것을 권한다.) 동학은 철학과 대중운동이 함께 한 아주 드문 예인데, 동학의 등장으로 성리학 단극체제가 성리학과 동학 양극체제로 바뀌었고 이는 현재의 좌우파 양극체제로 이어지고 있다. 동학에 대한 연구서가 아직 신통치 못한데 퇴임 후에도 좋은 책을 쓰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

-정년을 맞아 최근 펴낸 이란 영문 저서에선 소설 이론에 마르크스와 정신분석학을 접목했다고 들었다.

김=“대개 서양이론을 도입하는 걸 문학이론 공부라고 생각하는데, 내 나름대로의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싶었다. 서양 이론 책에는 없는 아이디어여서 영문으로 낸 것인데, 본격적인 소설이론이 되려면 많이 보충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 강인한 체제이긴 하지만, 핵심에는 부조화를 안고 있다는 것을 내 식대로 정리했고, 그래서 문학도 이 자본주의의 부조화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문학의 허구 개념이나 문장의 가정법 등을 부재와 결여를 탐구하는 정신분석의 욕망이론과 연결했다.”

-예전에 비해 지금 문학의 위상은 상당히 추락해 있다. 위기란 소리도 끊임없다.

오=“고등학교 때는 사실 살아가는데 자신이 없었다. 근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문학을 하면 삶의 태도와 정신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만 정립하면 충분했다. 돌아보면 내게 문학이 없었으면 의미 있는 삶을 제대로 찾아서 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인문학이 밥벌이가 안 된다고, 또 독자와 멀어진다고 위기라고 말하는 것은 단견이다. 물론 지금 문학이 위기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그 위기가 문학이 궁핍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문학은 과잉의 상태다. 요즘처럼 문학상 상금도 높고 문학상이 많은 때도 없다. 작품도 많이 쏟아진다. 여기에 위기 조짐이 있다. 위기는 풍요의 형태로 나타난다.”

김=“나에게 문학은 ‘내가 아는 것보다 더 큰 것’이라는 거다. 문학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늘 생각하는 것은 노자에 나오는 ‘不可名 復歸於無物 無物之象(불가명 복귀어무물 무물지상ㆍ이름을 말할 수 없으니/ 만물이 무물로 돌아간다/ 없는 것의 그림)’는 구절이다. 문학이란 없는 데서 나오는 그림인 것이다. 요즘 젊은 비평가들이 서양 이론에 많이 의존해 비평을 하는데, 그 이론들이 장식인 경우도 많다. 무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문학 공부는 자기를 위해서 해야 한다. 내가 좋아서 해야 평생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좌절하거나 위기가 와도 넘어설 수 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