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들과 주유소들이 또다시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지난 6일 ℓ당 100원 할인 종료 이후 시중 기름값이 다시 치솟자, 정유사와 주유소들은 서로 "네 탓"이라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할인조치 종료 직전 사재기 여부를 놓고 양측이 설전을 벌인 데 이어 2차 진실게임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18일 석유공사에서 운영하는 기름값 정보사이트인 오피넷에 따르면 정유사가 주유소에 주는 보통휘발유 공급가격은 6월 셋째 주부터 7월 첫째 주까지 꾸준히 인하됐다. 6월 셋째주 1,784.18원이던 휘발유 공급가격(세후)은 넷째 주 1,785.26원으로 약간 올랐지만 6월 마지막 주 1,763.95원으로 내렸고, 이달 첫째 주에는 1,761.75원로 떨어졌다. 근 한 달 사이 22원 이상 내린 것이다.
그러나 주유소의 판매가는 오히려 계속 오르고 있다. 실제로 18일 현재 보통휘발유 전국 평균가격은 ℓ당 1937.92원으로 할인조치가 끝난 7일(1,919.33원) 이후 계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서울지역은 휘발유 평균가격이 12일 2013.89원을 기록, 심리적 마지노선인 2,000원을 무너뜨렸으며 18일 현재 2021.67원까지 치솟았다.
이 같은 가격급등에 대해 정부와 시민단체들은 주유소측을 의심하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은 "올해 1분기 ℓ당 99.88원이었던 주유소 평균마진이 지난달 셋째 주 130원, 이달 첫째 주에는 142.83원까지 높아졌다"고 밝혔다. 주유소들이 정유사의 가격할인과 국제유가의 하락을 틈타 마진을 계속 높이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도 소시모의 조사 결과에 무게를 실었다.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15일 물가안정대책회의에서 "소비자단체의 분석 내용이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유소들은 발끈하고 있다. 정유사에서 공급받는 가격이 높아져서 판매가가 오른 것일 뿐 결코 폭리는 없다는 것. 주유소들은 특히 오피넷에 공개되는 정유사 공급가격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6월 마지막 주 오피넷에 공개된 휘발유 공급가와 자영 주유소가 매입한 가격은 정유사별로 많게는 ℓ당 73원까지 차이가 난다는 것. 예컨대 SK에너지는 오피넷에 나온 공급가가 1,776원이었지만 자영 주유소 매입가격은 1,849원으로 73원 차이가 나고, GS칼텍스의 경우 오피넷 가격은 1,754원인데 비해 실제 주유소 매입가는 1,771원으로 17원의 격차가 있다는 주장이다. 주유소 협회 관계자는 "정유사의 주간 공급가가 공개될 때마다 주유소 사장들은 실제와 큰 차이가 난다며 의아해한다"며 "정유사들의 꼼수가 숨어 있는지 의심스럽다" 말했다.
이에 대해 정유사들은 '꼼수'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정유사에서 밝히는 주유소 공급가격은 직영 주유소뿐만 아니라 대리점과 판매소에 공급하는 가격이 포함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주유소들이 얼마를 받는지는 정유사들이 간여할 문제가 아니지만 마진이 높아진 것은 어느 정도 맞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갖고 "정유사와 주유소가 가격인상에 대해 서로 손가락질을 하는데 과연 누가 옳은지 가격이 제일 높은 주유소 500곳을 샘플링해서 들여다 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름값은 덜 내린 만큼 덜 올려야 하는 게 기본"이라면서 "주유소의 회계장부도 들여다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경부 관계자는 "가격이 비싼 주유소의 회계장부를 분석해 정유사로부터 받는 실제 공급가격이 얼마인지, 주유소가 챙긴 실제 마진이 얼마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겠다는 취지"라며 "상황이 심각한 경우 행정조치 등을 취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물가의 고삐를 더 단단히 잡아야 한다"며 물가관리 전담 태스크포스(TF)의 구성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또 "이번 주 중 물가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해 직접 주재하겠다"고 말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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