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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시로 여는 아침]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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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시로 여는 아침] 1974

입력
2011.07.18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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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항구 남쪽에서도 귀신이 나왔다고 한다 해안통 쪽에서 나타나 시내 복판으로 들어가는 더벅머리 셋을 보았다고 한다 사람들을 향하여 무슨 말을 중얼거리다가 볼일이 있다고 재빨리 사라졌다고 한다 아무도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없다

광주(光州)에서도 대낮에 여우가 나왔다고 한다 온몸에 불을 켜고 충장로를 달리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여우는 사람들 다리 사이로 빠져 달아나면서 무슨 말을 중얼거렸다고 한다 아무도 그 말을 소리낸 사람은 없다

영등포(永登浦)에서도 여자 둘이 나왔다고 한다 야근을 하고 돌아가는 새벽 철둑길에서 여자 둘을 본 여자들은 집에 와 문을 걸어닫고 사흘 낮밤을 숨어 있었다고 한다 아무도 그들을 본 사람은 없다

용산(龍山)우체국 옆길에서도 붕대를 감은 대머리들이 나왔다고 한다 어깨들을 끼고 돌아가는 삼각지를 불러제끼며 돌아갔는데 아무도 그들을 기다린 사람은 없다 삼각지를 따라 부른 용산 술꾼들은 땅을 치며 하룻밤을 새우고 왔는데 이튿날부터 술을 끊었다고 술꾼 중의 1인이 쉬쉬하며 내게 전해왔다

● 담담하고 덤덤하지만 자꾸 기억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귀신이 출몰했던 걸 보면 제법 흉흉했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여우가 중얼거리고 철둑길에 나타난 여자 둘을 보자마자 문을 걸어 닫을 만큼 무섬증을 일으켰던 그 해.

그 해에 저는 뭘 했나 생각해보니 한글을 깨치기 전이고 동네 길가에 핀 빨간 사루비아 꽃술을 따먹으며 마냥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시인은 뭘 했길래 그 해를 기억할까요? 시집 뒤 약력을 슬쩍 보니, 1974년(25세) 유신 헌법에 반대하는‘개헌청원지지 문인 61인 선언’에 서명하고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조사 받음이라고 써있네요. 모두가 쉽게 잊는 일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시인인가 봅니다. 사랑한 아이의 고운 입술, 흩어진 청춘의 뿔피리 소리, 그리고 점점 희미해져 가는 역사적 사건에 이르기까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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