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I(동양제철화학) 주식관리 담당자였던 A(50)씨는 2009년 회사 금고에서 ‘놀라운 발견’을 했다. 정우석탄화학 소유의 자사 주식 30만주가 보관돼 있었던 것. 이력을 추적한 A씨는 1990년 4월 정우석탄화학 주주인 코펙스가 정우개발에 이 주식을 매도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정우석탄화학은 1995년 거평화학의 경영권 인수합병과 1999년 명칭변경 등의 과정을 거쳐 2001년 OCI에 최종 합병됐다.
당시 이 주식을 사들인 정우개발 대표는 벽산그룹 창업주의 아들인 B씨였다. B씨는 정우석탄화학이 매각한 OCI의 구주권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회사 내 자산에 등재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신주권으로는 바꾸지 못했고, 신주권 30만주는 고스란히 OCI 금고에 보관돼 있었던 것이다. 주식 전문가인 A씨가 보기에는 눈먼 주식이었다.
A씨는 지난해 OCI의 주가가 주당 30만원에 육박하자 금고 내 주식 30만주를 훔쳐냈다. 정우개발이 2000년 11월 벽산건설에 인수합병됐기 때문에 현재 주식은 벽산건설 소유라는 것을 확인한 뒤 주식시장에 밝은 공범 2명을 끌어들여 ‘작전’에 돌입했다.
A씨는 이 주식이 자신이 선대에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벽산건설을 상대로 ‘명의개서 절차 이행 등의 소송’을 제기했다. 자금이 급했던 벽산 측은 울며 겨자먹기로 지난해 6월께 A씨에게 100억원(현금 10억원, 어음 90억원)을 주고 소(訴)를 취하시킨 뒤 곧바로 신주권을 되찾았다.
벽산건설은 지난해 ㈜벽산 주식 157만주를 교환사채 발행을 통해 매각처분하면서, 되찾은 OCI 주식 30만주도 동시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벽산건설은 현금 700억∼800억원을 확보해 모 계열사를 지원하고 나머지는 채무를 갚는데 써 지난해 6월 1차 부도위기를 넘겼지만 한 달 뒤인 7월 결국 기업개선절차(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다시 선정됐다.
A씨의 사기극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꼬리가 밟혔다. 인천지검은 지난달 A씨 일당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사기) 혐의로 모두 구속했다.
하지만 벽산의 숨겨진 주식에 대한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수백억원대 주식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그 동안 찾지 않았고, 100억원이란 거금을 주고 주식을 되찾은 것도 석연찮다. 벽산건설은 1998년 1차 워크아웃 때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당시 직원들 사이에서는 ‘누군가 주식을 빼돌렸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워크아웃 때 받아간 공적자금까지 파헤쳐 주식을 국고로 환수했어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그러나 공적자금과 관련된 부분은 이번 수사 밖이라고 선을 그었다. 인천지검 관계자는 “주식을 훔쳐 주권자에게 사기를 친 형사 사건을 수사한 것이지 워크아웃 부분은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인천=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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