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차기 지도자인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17일 중국 티베트 평화해방조약체결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시짱(西藏·티베트)자치구 수도 라싸(拉薩)를 방문했다. 평화해방조약체결 행사에 최고 수뇌부가 참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중국이 티베트를 국가의 핵심 이익으로 꼽으면서 이 지역에 얼마나 큰 신경을 쓰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정치적 행위다.
그런 점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6일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면담한 데 대한 중국의 분노와 반발 수위는 어느 때 보다 높았다. 상대가 미국이라고 해도, 중국의 주권과 관련한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에 압박 수위가 매우 높았다. 중국은 달라이 라마를 국가 분열을 획책하는 분리주의자로 규정하고 “어떤 형식이든 외국 정치인이 달라이 라마를 만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하며 이런 행위는 국가 관계를 손상할 것”이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미국에 누누이 보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2월에 이어 또 다시 그를 만나 티베트 문제를 건드리자 중국은 내정 간섭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중국이 8월로 예정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의 방중과 연말께 시 부주석의 답방에 순순히 응할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중국 최고 지도층의 분위기가 예상외로 격앙돼있다는 게 베이징 외교소식통의 전언이다. 일각에서는 양국 갈등이 아직도 출발점에 서있으며 따라서 갈등이 앞으로 더욱 격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양국 관계에서 보다 강력하게 대응하는 쪽은 중국이다. 중국은 올해 들어 베트남ㆍ필리핀과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을 겪으면서 미국을 그 배후로 지목하고 대미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그런데도 미국이 이들 국가와 남중국해에서 연합훈련에 돌입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하고 있다. 당장 미군 제7함대의 해군 함정 3척이 15일 베트남 다낭항에 기함, 7일 일정으로 미국-베트남 연합군사훈련을 시작했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둘러싸고 베트남, 필리핀 등과 1 대 1로 접촉하며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 해결을 모색하던 중국은 이번 연합훈련에 잔뜩 자극을 받은 상태다. 연합훈련 참가국들이, 직접 거명은 하지 않았어도,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상정하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양국의 군 수뇌부가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벌이는 신경전 또한 날카롭기만 하다. 로버트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은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에서 “미국은 아시아에 군함기항을 늘리고 해군활동과 다자훈련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미 7함대 소속 톰 카니 소장은 “미국은 서태평양과 남중국해에서 60년간 활동했다”며 “이 같은 활동을 멈출 의사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천빙더(陳炳德) 중국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은 11일 마이크 멀린 미 합참의장과의 회담에서 미국과 베트남, 필리핀의 연합훈련이 부적절하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14일 방중한 김관진 한국 국방장관에게 미국의 남중국해 개입을 맹비난했다.
양국은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과 남중국 영유권을 둘러싸고 1년 가까이 갈등하다 올해 1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미국을 방문,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대화국면으로 선회했다. 베이징 외교가는 21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막하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양국의 갈등이 다시 본격화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베이징=장학만특파원 loca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