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의 원료인 춘장의 대표 브랜드인 '사자표 춘장'의 소유권을 두고 부자(父子)간 법정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사자표 춘장은 1940년대 화교 1세대인 왕송산씨가 처음 선을 보인 제품으로 한국 자장면 맛의 효시로 꼽힌다. 달콤한 맛을 좋아하는 한국인을 위해 중국 춘장에 캐러멜을 혼합해 만든 것으로 현재 국내 중국 음식점 10곳 중 7,8곳이 사자표 춘장을 쓸 정도. 하지만 한국 자장면 맛의 원조라 할 사자표 춘장이 부자간 갈등을 불러왔다. 다툼의 당사자는 다름아닌 왕송산씨의 대를 이은 아들과 손자다.
17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경남의 춘장 제조업체인 영유식품의 왕수안 대표는 최근 '춘장업계 1위 업체'인 영화식품과 자신의 아들이자 이 업체 대표인 왕학보 사장을 상대로 상표권침해금지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영유식품 왕 대표는 "영화식품과 왕학보 사장이 무단으로 영유식품의 대표브랜드인 사자표 춘장 상표와 맛을 도용해 매년 수십억원의 이익을 취하고 있다"며 상표 무단 사용을 중지하고, 총 10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영화식품은 200억원 가량의 춘장 시장에서 7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매년 14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왕수안 대표의 소송 대리인은 "사자표 춘장은 왕수안 사장이 영화장유라는 회사에서 90년대 초 이미 상표 등록했다. 영화식품에서 현재까지 법적인 허락도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자표 춘장 브랜드는 영화장유에서 1970대 초반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1992년 상표 등록됐다.
영화식품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영화식품은 1948년 조부인 왕송산씨가 설립한 용화장유(이후 영화장유)의 대를 이어 사자표 춘장의 전통을 60년 넘게 이어왔다며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영화식품 관계자는 "소송이 제기됐다는 사실 자체가 금시초문일뿐더러 왜 그런 소송을 제기했는지 의아하기만 하다"고 황당해했다. 영화식품은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1948년 창업 이래 3대에 걸쳐 한국 전통 장류(醬類)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춘장의 시장 주도권을 두고 부자간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술렁이고 있다. 업계는 아들 왕학보 사장이 2004년 영화장유의 사명을 영화식품으로 바꾸고 사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분란이 시작됐다고 추측하고 있다.
소송을 제기한 왕수안 대표의 영유식품은 영화장유가 1970년대 부산ㆍ경남 지역의 시장 확보를 위해 설립한 해표장유에서 1993년 이름만 바뀐 업체다. 아버지 왕 대표는 1973년 영화장유 2대 사장을 맡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 회사 사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들이 사장으로 취임한 뒤 식품유통 전문법인으로 재출범하면서 영화장유를 영화식품으로 이름을 바꾸는 동시에 아버지가 운영하던 영유식품의 생산을 중단해 갈등의 골이 생긴 것으로 안다"고 했다. 전통을 고집하는 아버지와 식품유통법인으로 사업 확장을 주장하던 아들 간에 의견 대립이 시작되면서 사실상 아버지와 영유식품을 쫓아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실제 당시 왕학보 회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의 몸이 좋지 않아 대를 잇기 위해 대만에서 하던 일까지 그만두고 왔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아버지 왕수안씨의 소송 대리인은 소송을 제기하며 "왕 사장(아버지)은 영화식품에 몸을 담은 적도 없으며 둘 사이에는 인연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양측은 이번 소송이 가족 간 갈등으로 비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영유식품의 소송 대리인은 "엄연한 법적인 문제로, 가족(부자)간 다툼으로 확대 해석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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