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7월 20일 저녁, 홍콩 퀸 엘리자베스 병원에 구급차 한 대가 도착했다. 그 안에는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영화배우 리샤오룽(李小龍)이 의식을 잃고 누워 있었고 의료진의 갖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깨어나지 못한 채 만 3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중국식 발음인 리샤오룽보다는 이소룡이란 이름이 더 친숙한 그는 인기 절정의 순간에서 불꽃같은 짧은 생을 마감했기에 지금까지 사망 원인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절권도(截券道)의 창시자이자 쌍절곤의 달인으로 불리는 그는 1940년 7월 2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자라며 당대의 고수 입만(葉問) 선생으로부터 영춘권을 배워 절권도의 근간을 마련했다.
싸움을 일삼던 청소년기에 미국으로 건너와 워싱턴대를 다니며 쿵푸 도장을 차렸고 64년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열린 국제 가라데 선수권대회에 초청돼 뛰어난 무술 실력을 선보여 할리우드 관계자들의 눈에 띄게 됐다. ABC TV의 액션드라마 '그린호넷'과 '롱 스트리트'에 무술 선생으로 출연해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그는 조연 역할을 버리고 홍콩으로 돌아가 골든하베스트가 제작한 '당산대형(唐山大兄)'에서 첫 주연을 맡게 된다. 홍콩 영화사상 최대의 흥행기록을 세운 당산대형 이후 리샤오룽은 두 번 째 주연작인 '정무문(精武門)'을 통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아뵤~"하는 기합 소리와 일그러지는 표현 연기, 그리고 호쾌한 쌍절곤 액션을 선보였다.
가라데 고수 척 노리스와의 콜로세움 대결로 유명한 '맹룡과강(猛龍過江)'의 성공과 함께 지금의 세계적 스타 청룽(成龍)이 엑스트라로 출연했던 '용쟁호투(龍爭虎鬪)'는 그 해 최고 수익을 올리며 리샤오룽을 무술의 전설로 남게 했다. 하지만 그는 개봉 3주 전 또 다른 영화 '사망유희(死亡遊戱)'를 촬영하던 중 갑작스레 사망하고 만다. 저녁 식사를 앞두고 동료 여배우의 집에서 두통을 호소하다 약을 먹고 잠이 든 리샤오룽은 혼수 상태에 빠졌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내 숨졌다. 뇌종양, 복상사, 삼합회의 암살설 등 그의 죽음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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