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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의 도시' 펴낸 그래픽 디자이너 정진열·김형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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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의 도시' 펴낸 그래픽 디자이너 정진열·김형재씨

입력
2011.07.1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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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Yes)와 노(NO)의 선택으로 단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도형화한 것이 알고리즘. 한데, 이 알고리즘은 어딘지 요상하다. 그래픽 속 '총각'이 직면한 예스와 노의 선택 대상은 유흥주점, 출장안마, 안마방 등이다. 출장안마로 들어서면 '기본안마', '60분간 오일마사지 및 경락마사지', '마사지 종료', '성관계 제안' 등 과정을 차례로 거친다. 각 단계마다 덧붙여지는 가격. 어느 쪽을 선택하든, 종착점은 성매매다.

우리 사회 성매매 풍속도를 알고리즘을 이용해 풍자한 이 그래픽이 던지는 놀라움과 근심은 이렇다. '성매매 업소가 이렇게 많다니. 이런 환경에서 총각이 미로 밖을 벗어날 수 있겠나.'

서울 시내 성매매 업소 현황과 매매춘의 과정을 한 눈에 보여주는 이 그래픽은 그래픽 디자이너 정진열(38) 김형재(32)씨의 작품이다. 2009년 3개월간 인터넷과 신문기사, 길거리에 뿌려진 광고 전단물 등의 자료 조사를 통해 완성됐다.

이들이 만든, 이처럼 색다르면서 삐딱한 그래픽은 이 뿐이 아니다. 초선에서 7선까지 당선 차수를 농도로 표현한 국회의원 배치도는 고참 의원일수록 뒷자리에 앉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선거구와 별도로 서울에 집을 소유한 의원이나, 서초 강남에 자택을 가진 의원 현황을 보여주는 그래픽은 국회의원과 부동산간 역학관계를 은연중에 암시한다.

2009, 2010년 계간지 자음과모음에 연재된 이들의 그래픽 작업물이 (자음과모음 발행)란 단행본으로 엮여 나왔다. 수록된 다양한 그래픽들은 중립적인 정보 전달 매체라는 그래픽에 대한 통념을 뒤집고, 우리 사회의 은폐된 이면을 '시각적으로' 고발하는 표현 수단임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공공 디자인에 대한 관심으로 의기투합한 두 작가를 14일 서울 가회동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정씨는 이 일련의 그래픽 작업에 대해 "우리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거대담론이 아니라 현실에 널려있는 정보를 용의주도하게 살펴 디자인으로 엮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 정치나 성매매 영역만은 아니다. 을지로입구역 잠실역 건대입구역 청량리역 서울역 등 주요 지하철역의 상업시설을 색깔로 칠한 그래픽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롯데 계열사 시설이다. 복잡한 신용대출 신청 절차를 도형화한 그래픽은 돈을 빌리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개인정보가 필요한지를 어떤 설명보다 더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선후배인 정씨와 김씨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를 겪으면서, 청와대 주변과 광화문 일대 권력 공간의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경찰이 시위대를 저지하는 지점과 시위대의 행진 방향을 시각화한 첫 작품은 경찰의 1,2,3차 저지선이 청와대를 중심에 두고 있음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두 사람은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디자인, 그리고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를 희망했다. 정씨는 "그간 디자이너들은 만들어진 제품을 포장하고 알리는 역할을 주로 해왔는데, 이제는 '자본의 대역'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디자인은 시처럼 디자이너의 생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시각언어"라면서 "이번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놓았다"고 했다.

이들은 협업을 통한 프로젝트의 확장도 꿈꿨다. 정씨는 "사회학, 건축학 등 다양한 분야 사람들과 공동 작업해 우리 사회의 진실을 다각도로 살피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씨는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도시의 이면을 살피는데 트위터, 페이스북 등이 좋은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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