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아이의 '놀라운' 능력을 발견했다. 얼마 전부터 장 보러 가는 길에 아파트단지 주차장을 지날 때마다 아이가 차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엄마, 저 차는 무슨 차야?" 하기에 "응, 소나타야", "SM5야" 하며 차종 이름을 가르쳐주곤 했다. 지난 주말 또 묻기에 차종을 확인하려고 차 뒤쪽으로 돌아가려는데, 아이가 "엄마, 소나타 아냐?" 했다. 확인하니 진짜 소나타였다. 우연인 줄 알았는데 이후에도 아이는 몇몇 차종을 확실히 구분했다. 자동차에 별 관심 없는 내 눈엔 소나타나 SM5나 그 모양이 그 모양 같은데 말이다.
벌써부터 엄마보다 차종을 잘 구별하는 아이 얘기를 하면 주변 어른들은 열에 아홉은 남자라 그렇다고들 하신다. 남자아이들이 원래 여자아이들보다 자동차 같은 기계를 더 좋아하고 더 잘 안다는 설명과 함께. 듣고 있으면 마치 우리 아이가 자동차를 잘 구별하는 능력을 타고난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뇌에는 '전문가영역'이라고 불리는 부위가 있다. 후두엽과 측두엽 사이인 뒷목 쪽에 있는 이 영역은 상위 수준의 시각 기능을 담당한다. 눈으로 보이는 아주 세세한 차이까지 구별해내는 게 바로 이 영역의 역할이다. 전문가영역은 사람 얼굴을 구분할 때 가장 활발히 활동한다. 말이나 소는 몇 마리가 있어도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지만 사람 얼굴은 일란성쌍둥이라도 달리 보이는 게 전문가영역 덕이다. 이 영역이 타고날 때부터 망가져 있으면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그 분야에 해당하는 시각자극을 접할 때도 전문가영역이 활성화한다"고 말했다. 보통 사람이 새를 볼 땐 뇌의 일반적인 시각영역만 활동하기 때문에 그 새가 그 새 같지만, 새 전문가가 새를 볼 땐 전문가영역이 함께 활동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새의 세세한 차이까지 구분해낸다는 얘기다.
전문가영역의 능력은 타고난다기보다 주로 경험을 통해 발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새를 많이 보면 볼수록 뇌에서 전문가영역이 활성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전문가영역의 활동에 남녀의 차이가 있다면 구조나 기능 자체가 아니라 그 영역을 활성화시키는 경험 때문이라는 게 신경과학자들의 견해다. 자동차를 많이 본 경험이 있으면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뇌에서 전문가영역이 작동할 수 있다.
신혼 때 콩나물과 숙주나물을 구별하지 못하는 남편을 보고 참 황당했다. 최근 한 남자 선배가 시금치와 쑥갓을 구별 못하는 걸 보고도 참 어이가 없었다. 남편과 그 선배는 모두 차종을 구별 못하는 내가 희한하다 했다. 그들과 나의 전문가영역은 달리 작동하는 게 확실해 보인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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