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73년 10월 초 중동전쟁 시작으로 초래된 1차 석유파동. 1배럴에 3달러이던 원유 가격이 3개월도 안 돼서 11.65달러로 4배 가까이 급등했다. 물가는 당연히 고공행진했다. 74년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2.3%에 달했다. 경제도 추락했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74년과 75년 두 해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2. 1979년 초 이란에서 회교혁명이 발생하면서 촉발된 2차 석유파동. 중동 정세가 극도로 악화되면서 국제 유가가 순식간에 두 배로 치솟았다. 5%대에 머물던 소비자물가는 15%대로 높아졌고, 미국 경제성장률은 또 다시 마이너스로 추락했다.
통상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면 물가도 떨어지기 마련. 하지만 성장이 둔화하는 데도 물가가 치솟는 경우가 있다. 앞선 두 차례의 석유파동처럼 외부 충격이 가해졌을 경우가 그렇다. 이런 '저성장 - 고물가'의 이례적 상황을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요즘 미국 경제를 두고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적지 않다. 작년 중반 더블딥(이중 침체) 우려를 딛고 회복세를 보이는가 싶더니 올 들어서는 뚜렷하게 둔화되는 모습. 1분기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연율로 1.9%에 그쳤다. 전분기 3.1%에 비해 크게 낮아진 수치다. 실업률은 9%대로 다시 상승했다.
게다가 한 때 디플레이션이 우려될 정도로 낮았던 물가까지 최근 들썩이기 시작했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비공식 관리범위인 1.5~2.0%를 크게 웃도는 3.6%까지 치솟았다.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의 정정 불안으로 인한 국제유가 급등이 가장 큰 원인이다. 주요 국제 투자금융회사들이 "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관측을 내놓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거 두 차례의 스태그플레이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현재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과거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약 1년 전부터 국제유가, 물가, 통화량 등에 큰 변화가 나타난 점을 감안해 국제유가가 급등한 2010년 9월 이후 기간을 과거 스태그플레이션 발생 직전 1년과 비교해 봤다.
먼저 최근 10개월간 국제유가 상승률은 46%로 과거 사례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다.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3%대로 과거 두 차례에 비해서는 수준이 크게 낮고 상승 속도도 느리다. 반면 실업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매우 높다. 정책 대응을 보면 통화정책은 정책금리 인하와 양적완화를 동시에 추진함에 따라 과거 스태그플레이션 기간 직전보다 크게 완화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통화증가율은 3.8%에 불과하여 크게 낮은 편이다. 이는 미 연준이 본원통화를 공급하고 있음에도 은행들이 불확실성 등으로 대출에 적극 나서지 못하면서 완화적인 통화정책의 효과가 제한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재정정책은 경기부양을 위해 확장적으로 운용되고 있어 과거 사례와 유사하다.
이런 내용을 종합해 보면, 최근의 국제유가 상승 속도 등을 고려할 때 공급 측 요인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 수준은 과거 스태그플레이션 발생 당시보다는 낮다고 볼 수 있다. 또 약한 경기 상승세, 낮은 통화증가율 등으로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상승 압력도 과거 사례보다 크지 않다.
따라서 현재 미국 경제에 '경기상승세 둔화-물가상승' 현상이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지정학적 불안 심화 등으로 고유가가 장기간 지속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노진영 한국은행 국제경제실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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