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르륵 꾸르륵…."
14일 오후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어린이병동 신생아중환자실. 웃고 있는 해나 워런(생후 11개월)의 입가에 지름 5㎜의 플라스틱 튜브가 삐죽이 튀어나와 있었다. 식도와 바깥을 잇는 이 튜브에서 나는 가래 끓는 소리가 해나의 '숨 소리'다.
해나는 태어날 때부터 기도(氣道)가 없었다. 세계적으로 보고된 사례가 50건에 불과한 희귀병인 '선천성 기관 무형성증'. 숨은 식도에 연결한 튜브를 통해 쉬고, 음식물은 배에 구멍을 뚫어 위와 연결한 튜브로 해나 몸에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해나는 곧 이 튜브들 없이도 살 수 있게 됐다. 해나는 지난 7일 세계 최초로 환자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든 인공기관지 이식수술에 성공한 이탈리아의 파올로 마키아리니 박사(한국일보 7월8일자 2면 보도)에게 세계 두 번째로 수술을 받게 됐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의 세계 최고 권위자인 마키아리니 박사에게 최장생존기간 기록이 6년에 불과한 희귀병을 치료받게 된 것이다.
사실 해나에게는 지난 11개월 자체가 '기적'이다. 지난해 8월 일산의 한 대학병원에서 태어난 해나는 얼굴로만 울었다. 기도가 없으니 우는 소리가 나지 않았고, 응급조치를 받기까지 5분여 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해나의 주치의인 이주영 서울대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이 병은 태어나자마자 숨을 쉴 수가 없기 때문에 숙련된 의사가 없으면 분만과 동시에 사망한다"고 말했다.
한 고비를 넘겼지만 병원도 부모도 해나를 포기했다. 병원에서 예상한 해나의 수명은 두 달. 부모는 치료 성공 사례조차 없는 희귀병을 고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경기 고양시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는 캐나다인 아버지 대럴 워런(35)의 월급 200만원으로 희망도 없는 수술을 감당하기 벅찼다. 결국 부모는 지난해 10월 해나가 응급 상황에 처해도 소생 조치를 거부한다는 심폐소생술 거부 동의서에 사인했다.
치료를 포기하면서 해나의 상태도 나빠졌다. 지난해 12월 발병한 폐렴이 전신에 감염되면서 패혈증까지 앓게 됐다. 그러던 중 올해 1월 미국에서 한 줄기 빛이 전해졌다. 재미 간호사 린제이 손(59)씨가 "해나를 미국에서 수술해 보자"고 제안한 것. 미국 어린이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20년 넘게 일한 재미동포 손씨는 지난해 10월 한 달간 서울대병원에 초청돼 간호사들을 교육했는데 그 때 해나를 눈 여겨 봤다. 미국으로 돌아간 손씨는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일리노이주립대병원의 소아과 전문의 마이크 홀트만 박사가 마키아리니 박사에게 해나를 소개했다.
해나의 부모는 6월 초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줄기세포를 이용한 수술 승인을 신청했다. 8월께 FDA 승인을 받으면 시카고의 일리노이주립대 병원에서 마키아리니 박사에게 수술을 받는다. 약 1억원 정도로 예상되는 수술비와 항공비를 마련하기 위해 서울대병원후원회와 모금기관이 모금하고 있지만 미국에서 처음 진행되는 수술이라 비용이 얼마나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한 때 딸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해나의 어머니 이영미(34)씨는 이제 해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작고 여린 내 딸 해나야, 너는 정말 살아야만 하는 아이구나. 꼭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아이구나."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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