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중소기업에 대해 담보대출을 할 때 여전히 꺾기를 하고 있습니다. 서민이나 중소기업 대출에서 꺾기를 못하도록 금융당국 차원에서 규제를 하고 있다는 말은 허울뿐입니다. 거기까지도 좋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금융당국이 은행의 대출 꺾기에 대해 조사를 나온다고 하면서 은행측에서 꺾기를 한 적금에 대해 해지를 해달라고 요청이 왔습니다. 지난해 대출을 할 때 '꺾었던' 것이지요. 게다가 해지비용도 제게 내라고 했습니다. 또 연말에 수신고를 높여야 하니 다시 적금을 들어달라는 요청도 해왔습니다. 참 황당한 요구지요. 하지만 은행이 제 명줄을 잡고 있기에 해달라는 대로 다 했지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 지인과의 통화 내용이다. 그는 피해자가 자신 뿐만이 아니라 중소기업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꺾기는 기업이 대출을 할 때 은행에 일정한 금액을 강제로 예금토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은행은 대출을 해 주고 그 대출금 일부를 유보시켜 주로 정기예금이나 보험, 펀드 등에 들게 하기 때문에 대출금리 이상으로 실질금리를 인상하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서민이나 중소기업 등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하지만 고질적으로 꺾기는 근절이 되지 않고 있다. 지인의 이번 사례처럼 꺾기는 계속 변형하면서 멀쩡히 존재하고 있다. 은행 직원들이 실적에 목을 매고 있는데 이런 관행이 사라질 리 만무하다.
지난달 감사원이 발표한 '중소기업지원시책 추진실태' 감사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6개 기관에서 운용하는 중소기업지원 정책자금 중 대출 즉시 6개월 이상의 정기예금으로 예치한 금액이 4,203억원(3,504건)에 이르렀다. 이 중 96억원(38건)에서는 대출은행이 예금 등 다른 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이른바 '꺾기'가 발생했다. 중소기업이 대출받은 자금을 은행에 예금 등으로 다시 장기간 예치하는 황당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대출금 관리는 은행의 책임이라는 이유로 내버려두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이 같은 문제의 결과는 뭘까. 우선 서민과 중소기업들이 상당한 수수료와 이자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 은행이 서민과 중소기업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들게 하는 것이다. 반면 은행은 개인과 중소기업들 덕분에 엄청나게 배를 불리고 있다. 한국일보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수수료와 이자수익으로 한 해에만 11조3,000억원을 챙겼다. 은행들이 서민과 중소기업들의 등을 쳐서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1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세계 100대 은행'에 우리나라 은행이 3곳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것이 서민과 중소기업의 손목을 비튼 결과라면 입맛이 씁쓸하다. 규모에 걸맞은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불합리한 수수료와 금리체계가 있는지 살펴보겠다"며"서민과 소비자 보호정책을 집중적으로 발굴하고 있다"고 말했다. 좋은 얘기지만 금융당국의 행태를 볼 때 그의 말에 별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일찍이 토마스 제퍼슨은'은행은 군대보다 더 위험한 존재'로 생각했다. 은행은 그만큼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조재우 선임기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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