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기이하다. 자동차들이 하늘을 날고 뒤집어진다. 거대한 폭발 장면이 스크린을 종종 채운다. 아니나 다를까. 제작비가 100억원을 넘는다. 누가 봐도 덩치는 블록버스터. 그런데 정서는 B급으로 충만해 있다. 스피드를 내세운 액션물 '퀵'은 대작 B급이라는 형용모순으로 표현될 영화다.
이야기는 다짜고짜 식이다. 사실성과 인과관계가 뭐 대수냐는 듯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후진할 수 없는 오토바이처럼 무조건 재미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린다. 호쾌한 볼거리로 재미를 안기고, 아기자기한 웃음거리로 즐거움을 던진다.
고교시절 잘 나가는 폭주족이었다가 퀵서비스 기사가 된 한기수(이민기)와 기수를 사랑했던 아이돌 그룹 멤버 아롬(강예원)이 스크린 중심에 선다. 어느 날 기수는 조그마한 소포를 배달한 뒤 거대한 폭탄 테러를 목격하고, 정체 모를 테러리스트에게 발목을 잡히게 된다. 테러리스트의 명령에 따라 폭탄을 배달하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상황이 된 것. 기수가 서울 청담동에서 상암동으로 20분만에 '배달'하려던 아롬도 본의 아니게 위험천만한 모험에 합승하게 되며 스릴을 더한다.
상식적으로 따지고 보면 앞뒤 말이 안 되는 점이 많다. 서울에서 자란 게 분명한 기수는 어눌한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며 종종 웃음을 부른다. 그의 입에서 왜 사투리가 나오는지 배경 설명은 전혀 없다. 스타인 아롬이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조개 집에서 폭음하는 장면도 이해불가다. 기수와 아롬이 탄 오토바이가 반원형의 터널 천장을 이용해 바리케이드를 넘어가는 장면 등 물리적 상식에 반하는 모습도 등장한다.
상식의 잣대를 들이밀지 않으면 이 영화 충분히 재미있다. 일단 볼거리부터 화끈하다. 거대한 트레일러가 도로 위를 미끄러지고 여러 대의 자동차가 반파되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뚝 떨어진다. 아마 충무로 역사상 가장 많은 자동차를 부순 영화이지 않을까. 기수가 오토바이를 타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는 모습도 꽤 청량감 있다.
폭소탄도 종종 터진다. 춘심이라는 아롬의 본명부터 이 영화의 유머 성격을 드러낸다. 특히 아롬이 벗으면 폭탄이 터지도록 만들어진 헬멧을 쓰고 샤워하는 장면에선 음료수를 마시지 말 것. 십중팔구 앞 자리 관객 머리에 마시던 음료수를 뿜을 수 있으니까.
배우들의 코믹 연기가 제법 찰기 있지만 대체로 소모품처럼 쓰인다. 영화는 연기력을 극대화하는 대신 전형적인 연기로 좋은 배우들을 소비한다. 검은 마스카라 눈물이 번진 얼굴로 몸을 사리지 않는 강예원과 짬뽕 국물을 뒤집어쓰는 등 갖은 수난을 당하는 김인권(그는 폭주족 출신 경찰이다)의 연기가 그나마 인상적이다.
'뚝방전설'(2006)로 묘한 유머 감각을 발휘했던 조범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이 제작했는데, 윤 감독 특유의 슬랩스틱 코미디들이 많다. 긴 여운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진 말 것. 쉴새 없이 달리지만 결국 남는 것은 없는, 전형적인 팝콘 무비다. 2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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