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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황금햇살에 젖은 칠월을 말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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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황금햇살에 젖은 칠월을 말리며

입력
2011.07.1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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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현리에 7월 햇살다운 햇살이 쏟아집니다. 쉬 차가워졌다 쉬 더워지는 사람들에겐 뜨거운 햇살이지만 자연에 생명의 주소를 가지고 사는 것들에게는 황금 같은 햇살입니다. 은현리 어디에 눈을 주어도 장맛비에 오래 젖은 것들 오랜만에 즐거운 듯 제 몸 말리고 있습니다.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돌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오늘은 노란 해바라기가 눈부신 자신의 사랑에 대해 눈을 떼지 못하고 서있는 것 같습니다. 외계인이 심어놓고 간 안테나 같은 하얀 접시꽃은 꽃잎에 맺힌 물방울을 털어내며 우주와 교신을 시작하려 합니다. 뒷산에서 늘 울어대던 꿩 가족도 몸을 말리며 논길까지 나왔습니다.

일부다처제의 가장인 장끼는 또 무슨 치장을 하는지 보이지 않고 어미 까투리가 어린 꺼병이들을 줄 세워 나왔습니다. 저 햇살 받아 도라지 벌개미취 봉선화가 꽃을 펼칠 것입니다. 나비도 날고 일벌도 붕붕거리며 꿀을 찾아 다닐 것입니다. 저도 젖은 시집 몇 권을 햇살에 널어 말리며 햇살에 시가 마르는 소리 들을 것입니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왜가리 몇 마리 숲에서 날아와 허공을 선회하며 논으로 내려앉는데, 그 날갯짓에 햇살이 여울물처럼 반짝반짝하며 튕겨져 나갑니다. 그 뒤론 뭉게구름이 솟아오르고 여름산도 힘차게 솟아오릅니다. 저 푸른 궁륭(穹窿)을 활시위처럼 당기며 오늘 저녁은 잘 익은 열나흘 달이 떠오를 것입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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