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일반석에 엄마와 함께 앉아 있던 아들은 전반이 끝나기 전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그 사이에 아빠 설기현(32ㆍ울산 현대)의 골이 터졌다. 울산 유니폼을 입고 첫 필드골을 성공시키는 순간이었다. 하프타임에 설기현의 큰 아들 인웅(10)을 만난 울산의 유소년 코치는 "아빠가 골 넣는 거 봤니"라고 묻자 인웅은 "에이 설마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들조차 믿지 못할 만큼 울산으로 이적한 뒤 부진했던 설기현은 8개월 10일 만에 필드골을 성공시키며 '아빠의 자존심'을 세웠다.
'스나이퍼' 설기현은 13일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열린 2011 러시앤캐시컵 결승 부산 아이파크와 경기에서 1골1도움으로 팀의 3-2 승리를 이끌었다. 울산은 설기현의 골을 앞세워 2007년 이후 4년 만에 컵대회 정상에 복귀했다. 울산은 또 김신욱(11골)이 득점왕, 최재수(4도움)가 도움왕을 차지해 컵대회에 걸린 모든 타이틀을 싹쓸이했다.
올해 포항에서 울산으로 이적한 설기현은 이날 경기 전까지 23경기에서 페널티킥으로 2골을 기록하는데 그쳤다.'먹튀'라는 오명까지 붙었다. 설기현이 침묵하자 축구 선수가 꿈인 아들 인웅이조차 아빠의 득점 장면이 희미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를 짧게 자른 설기현은 이날 최전방 공격수로 출전했다. 전반 25분 설기현은 최재수의 왼발 크로스를 페널티 지역 왼쪽에서 절묘하게 방향을 바꾸는 헤딩 슛으로 연결했지만 아쉽게 골문을 벗어났다. 13분 뒤 설기현은 정확한 패스로 고창현의 선제골을 도왔다. 측면에서 날아온 크로스를 문전에서 살짝 떨궈줬고, 고창현이 통쾌한 중거리포로 골 네트를 갈랐다.
1-0으로 전반전이 끝날 것 같은 분위기에서 추가골이 나왔다. 전반 45분 최재수의 크로스를 설기현이 골지역 왼쪽에서 왼발로 틀어 골 네트를 가른 것. 지난해 11월3일 경남전 이후 첫 필드골이었다.
후반 13분 강진욱이 김신욱의 패스를 받아 쐐기골을 넣었다. 3골 차로 벌어졌지만 부산은 포기하지 않고 울산을 압박했다. 후반전에 교체 투입된 양동현이 26분과 32분 연속골을 터트리며 울산을 압박했다. 울산은 후반 34분 설기현을 대신해 박승일을 투입, 수비를 강화하며 상대의 추격을 뿌리쳤다.
울산=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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