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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저급한 남북 상호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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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저급한 남북 상호비방

입력
2011.07.1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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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사격장에서의 표적지 문제를 둘러싸고 남북이 갈등하더니, 이제는 군부대에서의 구호를 가지고 갈등하고 있다. 북한에서도 4일 평양시에서 'MB규탄 10만 평양시 군중대회'가 개최되었다고 한다. 남북의 상호 적대의식의 표출이 경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지난 60여 년간 남북의 적대적 상황은 서로에 대한 적개심의 표현을 통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어 왔다. '악순환의 굴레'라 할 만하다.

부활한 남북 상호 적대 행위

총을 쥔 군대에게 '적'이 누군인지를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져 왔다. 누군가를 '적'으로 삼고, 그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군대만이 아니라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광경이다. 더구나 남북이 무력으로 충돌하고, 민간인 사망자까지 나온 마당에 적개심을 고취하기 위한 표적지와 구호는 때로는 군대의 정신 무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적개심의 고취만으로 군대를 정신무장 시킬 수 있을까? 전쟁의 역사를 연구한 역사가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전쟁에서 영웅이 된 인간들의 공통점은 적개심이 아니라 애국심으로 충만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나의 가족과 고향과 국가에 대한 사랑이 그를 파괴하려는 '적'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 중 평상시에는 오히려 얌전한 '순둥이'에 가까운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이번의 표적지나 군부대 구호는 그것이 애국심에 기초한 감정의 표현이었는지에 의구심이 든다. 더구나 그것이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보면 긍정적 효과보다는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문제는 이번 일의 처리과정에 있다. 이번의 일을 계기로 남북의 상호 적대심 고취와 표현을 금지하자는 의제로 승화시켰으면 어땠을까? 지난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남북은 상호간에 비방을 중단하기로 약속했다.

이에 따라 휴전선에서의 심리전 방송만이 아니라, 공중파를 통한 비방도 중단되었다. 남북이 끊임없이 적대하던 60년의 역사에서 보면 획기적인 진전이라 할 만했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 이후, 이런 상호 적대 행위는 다시금 부활했고 남북의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이번 일은 바로 이러한 적대 행위의 부활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남북간에는 삐라 살포를 둘러싼 갈등, 심리전 재개를 둘러싼 갈등 등 언제라도 무력 충돌이 가능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여기에 예비군 표적지 문제나 군부대 구호 문제로 인해 갈등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더구나 지금은 남북의 상호 불신이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일을 오히려 남북의 불신을 하나씩 해소하기 위한 의제로 삼으면 어떨까?

삐라, 사격 표적지, 군부대 구호와 같은 행위에 대해 북한이 반발하는 만큼 우리 사회도 북한이 우리 대통령에 대한 격한 비난의 표현이나 군중집회 등에 대해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다. 설령 대통령과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좋은 감정을 가질리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중단되었던 상호비방 중지를 다시금 의제로 제기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우리가 더욱 공세적으로 의제로 제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북한도 자신들의 대남 적대 행위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지금까지 남북은 서로를 들여다보는 거울과 같은 존재였다. 한편의 적대행위는 다른 한편의 더 노골적인 적대행위를 낳게 되고, 이것이 반복되어왔던 역사가 바로 지금까지의 분단 역사였다. 더 이상 서로의 적대행위에 대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이런 일이 앞으로 서로의 적대 행위를 불식시키는 의제로 제기되고, 남북이 다시금 손을 마주쳐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먼저 시작해보면 어떨까.

정영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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