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 같은 총체적 난국을 용케 피해왔던 이탈리아가 위기설에 휘말리고 있다. 이번에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스스로 정권 내부의 불협화음을 노출하는 등 정치적 불신을 자초한 것이 사태를 키웠다.
사실 지표로 본 이탈리아 경제의 건강상태는 디폴트(채무불이행)설이 나올 정도로 나쁜 편은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그리스에 이어 유로존 두번째로 많기는 하지만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지난해 4.6%로 그다지 높지 않다. 이자로 나가는 돈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균형재정에 가깝다.
갑자기 이탈리아 경제에 경고등이 들어온 것은 8일(이하 현지시간).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줄리오 트레몬티 재무장관을 두고 "내각에서 팀 플레이를 하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라며 "스스로 천재라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을 바보 취급한다"고 혹평한 것. 직전에 트레몬티 장관은 앞으로 3년간 400억 유로의 지출을 줄여 2014년까지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는 공격적인 계획을 밝혔는데, 이는 베를루스코니의 인기영합정책과는 동떨어진 '입에 쓴 약'이었다. 둘 사이가 나쁜 것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 돌출발언은 그 시기가 매우 나빴다. 베를루스코니의 발언은 시장에서 긴축재정 현실화의 큰 장애물로 해석돼 곧바로 증시가 급락하고, 채권시장은 약세로 돌아섰다.
제임스 월스턴 아메리칸대 교수는 11일 텔레그래프에 기고한 글에서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저소득과 실업상태를 겪으면서 베를루스코니 특유의 낙관주의가 호응을 잃게 됐다"며 "이번 사태의 문제는 바로 리더십"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의 리더십 부재도 문제로 지적된다. EU가 그리스 재정 위기에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해, 위기가 이탈리아까지 전염되는 것을 방치했다는 얘기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리스가 디폴트 직전에 계속 불안정하게 서 있는 바람에, 투자자들은 빚이 많고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는 모든 나라들을 위험하게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G7국가이자 유로존 3대 경제대국인 이탈리아에 닥칠 위기는 그리스 재정위기와 비할 바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탈리아의 경제규모(2009년 GDP 2조1,127억달러)는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 전체 GDP와 맞먹을 정도. 또 다른 국가에 대한 구제금융에 돈을 내야 할 이탈리아가 오히려 구제금융을 받는다면 국가별로 분담해야 할 액수도 급증한다. 모이세스 나임 카네기재단 연구원은 "만약 이탈리아가 정치적인 대응 미숙 때문에 위기에 전염된다면 유로존뿐 아니라 전세계 경제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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