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보다 먼저 산업화를 경험한 선진국에서는 노동조합의 금지와 허용, 그리고 노조의 설립과 활동에 대한 적극적 보장을 단계적으로 진행했다. 사회적 권력이 된 노조로부터 조합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민주적 운영에 관한 규제도 실시하고 있다. 노조는 이제 자본주의사회의 불가결한 제도로 발전했다. 그 과정에서 기업은 불편하더라도 공정경쟁과 산업평화를 위해 노조와 공존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경험을 공유했다.
경제ㆍ산업구조가 고도화되고 근로자들간의 이해관계도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게 전개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이해관계가 같거나 비슷한 근로자들끼리 자신들의 선택에 따라 노조를 설립하거나 가입하는 것은 일반적이고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복수노조는 근로자들이 고용형태, 직무내용 및 직위 등에 따라 차별화되었던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큰 틀에서 서로 조율하고 협력해 공통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조직적ㆍ제도적 기반이다. 노조들이 서로 더 많은 근로자들을 조합원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노조간 경쟁과 협력의 문화가 정착되고 운영상의 투명성을 높여 노조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기대효과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우려도 적지 않다. 가장 많이 지적되는 문제는 복수노조 설립이 노노간의 갈등을 증폭시켜 사용자의 지위를 강화하는데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기존 노조의 노선과 태도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제2, 3의 노조를 설립해 조합원을 분열시킬 가능성이 있다. 일부이긴 하지만 이미 현실화되는 기업도 있다. 새로 임단협이 개시되는 내년 초에 복수노조의 설립이 가속화되리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직내 갈등보다는 그동안 노조로부터 소외되었다고 여기는 근로자그룹에서 노조설립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지만 이미 산업화의 긴 여정에서 우리 근로자들은 사용자와 노조의 행태에 대한 냉정한 평가의 안목을 가지고 있다. 근로자들은 신중하게 판단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우려의 목소리는 복수노조와 함께 교섭창구 단일화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교섭대표노조에서 배제되는 소수노조의 단결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면 수긍이 가는 지적이다. 그렇지만 노사간 대화 주체가 다수라고 해서 단체교섭 자체가 여러 개로 갈라지고 근로자의 세력이 분열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복수노조 때문에 조직대상이 중복되고 근로조건이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함에도 서로 다른 근로조건이 경쟁적으로 교섭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빈번한 교섭과 쟁의행위는 기업경영에 큰 부담을 주게 되고, 이는 노사 모두에 대해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다수의 선진국에서도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하나의 단체협약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단체교섭은 근로조건의 개선과 기업의 경쟁력이 상생할 수 있도록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규칙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노사관계의 안정과 교섭의 효율성을 위해 교섭창구는 단일화되고 그 안에서 노조 간에 이해관계의 조율과 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서로 조화되기 어려운 이질적인 근로조건과 협약정책을 가진 노조라면 교섭단위를 분리해 각자의 이해관계에 맞는 교섭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교섭대표노조와 사용자가 소수노조와 그 조합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도록 공정대표의무 준수 여부를 철저하게 감시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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