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가에 또다시 '현역 의원 물갈이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여야 중진 의원들이 새 인물 영입을 위해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텃밭 대신 다른 곳으로 둥지를 옮기는 인적 쇄신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여야는 총선을 앞두고 쇄신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공천 과정에서 현역 의원을 대거 교체해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2000년 16대 총선 들어서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심화했다.
한나라당은 16대 총선 때는 35%의 현역 의원을 교체해 선거를 치렀다. 한나라당이 야당이 되면서 자진 정계은퇴를 선언한 의원들이 많아 상대적으로 젊은 피 수혈이 용이했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도 한나라당은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의원 등 이른바 '남원정' 개혁파는 최병렬 당시 대표를 포함한 당내 중진들의 불출마를 요구했고, 실제 상당수 중진들이 정계를 떠나면서 43%의 현역 의원이 출마를 접었다.
이어 친이계가 공천을 주도한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공천 학살'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친박계 의원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했다. 강재섭 당시 대표도 이에 책임을 지고 불출마를 선언하는 등 무려 48%의 현역 의원이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했다.
민주당도 18대 국회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인 김홍업 의원과 당시 사무총장이었던 신계륜 의원,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공천에서 대거 탈락시키는 등 쇄신 이미지 부각을 위해 애썼다.
이처럼 총선 때마다 현역 의원 대폭 교체가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존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권이 인기가 없으니까 정책이나 노선이 아닌 현역 의원 교체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이 그다지 환영 받지 못하는 풍토 속에서 다선(多選)에다 중진일수록 오히려 '고인 물'이미지가 강한 것으로 비치는 점 때문에 새로운 정책 개발보다는 인물 교체라는 비교적 쉬운 방법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반복돼 온 공천 물갈이 현상을 우려하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초선 의원들이 많이 들어왔다고 국회 폭력 등 정치 후진성이 줄어든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미국의 경우 경험 있는 다선 의원들이 더욱 존중 받으며, 이들에 대한 존경심이 정치적으로 꼬인 문제를 풀어나가는 힘의 원천이 된다"고 말했다. 시니어리티(seniority·중진)에 대한 경외심에서 출발하는 선진국 의회의 리더십을 보면서 우리 정치권도 무조건적인 현역 의원 교체보다 옥석을 가리는 공천 시스템을 자리 잡게 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많다.
신정훈기자 h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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