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스트푸드점 매니저 "13년째 계약직… 정규직은 대졸자만 된대요"
경북 경주시에 사는 이모(32)씨는 최근 다시 백수가 됐다. 6개월 동안 다녔던 자동차부품회사를 최근 그만 둔 이씨의 최종 학력은 고졸. 다니던 회사에서 경력을 쳐줘 월급은 200만원 정도를 받았다. 하지만 정규직보다는 적게 받은 것이었고, 수당 보너스 사원복지 등 모든 것에서 두드러진 차이를 어쩔 수 없었다.
이씨는 백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다시 직장을 알아보고 있다. 그러나 좋은 직장을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이씨는 "우리 사회는 다 똑같은 것 같다. 경영자는 우리에게 돈을 적게 주기 위해 고졸이란 딱지를 갖다 댄다"고 푸념했다.
19.2%. 교육과학기술부가'2010년 전문계 고등학교 현황'자료에 공개한 졸업 직후 취업한 전문계고 학생 비율이다. 그러나 고교 졸업 후 취업을 했다고 해도 대부분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하고, 임금 승진 복리후생 등에서 대졸자들에 비해 열세에 놓이게 마련이다. 학력 인플레로 대학 진학자가 급증한 요즘 고교 졸업자들의 삶은 시작부터 험난하기만 하다.
고졸 초임은 대졸자의 67%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학력별 초임'에 따르면 2009년 고졸자들은 월 평균 137만원을 벌어 대졸자 평균(203만원)의 67%에 불과했다. 게다가 고졸자들은 대부분 현장에서 고된 업무에 시달리느라 전문성을 키울 여유도 없었다.
국내 유명 패스트푸드 가맹점에서 13년째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는 정모(34)씨는 직영점 매니저가 되려던 꿈을 일찌감치 접었다. 직영점 매니저만 되면 지금 받는 월급(150만원)보다 두 배는 더 받을 수 있지만 응시 자격이 대졸자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1997년 실업계 고교를 졸업한 뒤 점포 관리자로 입사한 정씨는 지금까지 매년 재계약을 하는 비정규직이다. "하루 10시간 주6일을 일해도 초과 근무수당이 없고 휴일도 평일 중 하루에 불과했죠. 정규직 매니저라면 달랐겠죠. 이런 상황에서 무슨 대학 입학 준비를 하겠어요." 그는 고졸,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에 혀를 내둘렀다.
지표상 임금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학력별 초임'자료에 따르면 2009년 전체 고졸자 초임을 100으로 봤을 때 대졸자는 140.4로 2002년 130.6과 비교해 차이가 커졌다.
파견직 전전하다 빈곤층 추락
답답한 마음에 고졸 노동자들은 대학 문을 두드리고 있다. 97년 고교 졸업 후 수도권의 한 도시에서 피아노 학원 강사로 일하는 한모(34ㆍ여)씨는 지난해 인근 전문대학 피아노과에 입학했다. "학부모들이 어느 음대를 졸업했냐고 물을 때마다 자격지심을 느꼈다"는 그는 "원장님이 '이젠 대학 졸업장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해 떠밀리듯 입학했지만 등록금이 부담"이라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 2년 단위로 계약하는 근로조건은 고졸자가 비정규직 굴레를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다. 고교 졸업 후 서울시내 한 백화점에서 파견직으로 카드 발급 업무를 맡고 있는 김모(24ㆍ여)씨는 병원 간호조무사, 대학 행정조교 경험도 있다. 하지만 매번 원청업체가 계약을 연장해 주지 않아 1년 만에 일을 그만둬야 했다. 다행히 2년 단위 계약을 연장해 총 6년의 근무가 가능한 지금 회사를 만났지만 그렇다고 걱정이 끝난 건 아니다. "10년 뒤에도 파견직에 머무를까 봐 두려워요. 계약직, 정규직 전환만을 바랄 뿐이죠."
전문가들은 이들이 우리 사회의 잠재적 빈곤층이라고 경고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이병희 연구위원은 "고졸자들을 저임금 단순노동으로 내몰고 임금 등 처우에서 불공평한 대우가 계속되면 이들은 우리 사회의 신 빈곤층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사회적 인식 변화에 기반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 성차별에 한번 더 우는 고졸 여성
"2년제 대학 이상 학력이 아니면 곤란합니다. 사이버대학에라도 등록하는 게 어떻겠어요."
고졸 학력의 박지은(26ㆍ가명)씨가 한 유아교육업체의 방문교사 면접에 갔다가 들은 말이다. 박씨는 네 살짜리 아들이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자 본격적으로 구직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고졸 학력의 아이 엄마' 박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출산으로 인한 4년의 공백은 컸다. 면접을 본 이 업체만 해도 박씨의 학력을 알기 전에는 "목소리가 상냥해서 (박씨가) 마음에 든다"던 터였다. 박씨는 "고졸 신분에 아이까지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무실 경리나 빵집 아르바이트밖에는 없었다"고 낙심했다. 결국 그는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일할 수 있고 능력 위주로 평가 받는다"는 지인의 조언에 보험설계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 중이다.
실제로 일하는 고졸 여성들은 학력 차별에 더해 성 차별까지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통계청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 노동자 임금은 남성의 67%에 불과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었다고는 하나 지난해 고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도 52.6%에 그쳤다. 10년 전(2000년 49.4%)에 비하면 약간 늘어난 수치지만 여전히 남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지난해 74.8%)보다 훨씬 낮다. 여성의 일자리가 아직 남성보다 양적ㆍ질적으로 열악하다는 증거다.
같은 여성끼리도 학력 차별이 뚜렷하다. 여성정책연구원의 '2010년 한국의 성 인지 통계'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대졸 여성의 임금을 100으로 놓고 볼 때 고졸 여성의 임금은 63.5였다. 2009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 대졸 여성은 고졸 여성보다 1.5배 많은 임금을 받고 있었다.
육아 휴직 중인 권혜영(30ㆍ가명)씨도 고졸 여성 노동자의 고충을 절감하고 있다. 1999년 고교 졸업 후 입사한 뒤 3년 만에 100만원 오른 권씨의 연봉은 겨우 1,300만원 남짓. 그런데 권씨보다 2년 반이나 늦게 들어온 대졸 출신 여직원의 초봉은 당시 경기가 좋지 않았는데도 1,600만원이었다. 권씨는 "그때까지 고졸이라 무시당하고 차별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연봉에서 그렇게 큰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전문계고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을 옮겨 다니다 아이를 낳고 퇴사한 박진희(34ㆍ가명)씨도 "출산휴가에 육아휴직까지 하다 보니 고졸인 내가 이 나이에 새로운 사무직 자리를 찾는 게 엄두가 안 났다"며 "내 아이만큼은 반드시 대학에 보내 전문직 고학력자를 만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이주희 교수는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예전에는 고졸이 하던 업무도 대졸이 잠식했고 고졸은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대졸과 고졸 간의 임금 격차가 지나치게 크고 노동시장에서의 여성 차별까지 더해지면서 고졸 여성은 나쁜 일자리 중에서도 더 나쁜 일자리로 가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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