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총선을 9개월이나 앞두고 여의도 정가에서 때 이른 물갈이 논쟁이 한창이다. 뭐든지 시원하게 바꾸고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을 선호하는 정치문화 때문인지 일단 "고인 물을 바꾸자"는 논리가 선명해 보이고 힘도 얻는 듯하다. 더욱이 한나라당 원희룡 최고위원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민주당 정세균 전 대표, 김효석 의원이 호남을 떠나고 김영춘 최고위원이 험지인 부산에서 나서겠다고 하니 여야 텃밭인 영ㆍ호남의 의원들, 그리고 나이 많은 중진들이 좌불안석이다. 신중론자들은 자칫 쇄신을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으로 몰릴까 봐 눈치만 보고 있다.
■ 물갈이는 말 그대로 물을 갈아주는 것인데, 대표적인 경우가 어항이다. 어항의 물을 갈아주지 않으면 이끼도 끼고 물도 탁해진다. 그러나 너무 자주 갈거나 한꺼번에 갈아줘도 물고기들이 스트레스 때문에 죽는다고 한다. 전체 물갈이는 오염되거나 질병이 발생했을 때만 할 뿐 대개 1, 2주에 한 번, 20~30% 정도 바꿔주는 부분물갈이를 한다. 이것도 무척 섬세하게 해야 한다. 수돗물을 받아 수질안정제를 넣고 3, 4일 햇빛을 보게 한 뒤 어항 온도와 맞춰 10분 간격으로 조금씩 갈아주는 게 정답. 그래야 물고기들이 자연스럽게 적응한다고 한다.
■ 어항의 물갈이와는 달리 한국 정치의 물갈이는 화끈하다. 우선 공천에서 현역의원들이 다수 낙마하고 선거에서도 새 인물을 선호하는 성향 때문에 우수수 떨어진다. 미국 영국 총선에서 현역 교체율은 통상 20% 내외인데, 우리 국회는 절반 안팎이다. 지금 활동 중인 18대 국회도 초선의원이 134명, 44.8%다. 그 이전 탄핵바람이 불었던 17대 총선(2004년)에서는 무려 188명이 초선으로 63%에 달했다. 이는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5공 출범 직후인 11대 국회의 초선 비율 78.9%에만 못 미칠 뿐 1980년대 이후 최대였다.
■ 다른 때도 비슷했다. 15대 137명(45.8%), 16대 112명(40.6%)으로, '한국 국회는 초선 국회'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나이도 많으면 일단 밀린다. 60대 이상 의원은 17대 49명(16%), 18대 63명(21.1%)이다. 60대 이상 의원이 40%, 10년 이상 활동 중인 다선 의원이 39%라는 미국 하원과 비교하면 우리는 참 많이 바꾼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 '노장청(老壯靑) 조화'가 강조되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시들하다. 근데 참 이상하다. 매번 새 인물로 바꿨는데, 왜 4년만 지나면 물갈이론이 또 나올까?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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