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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EBS 수신료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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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EBS 수신료를 아시나요

입력
2011.07.1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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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원. TV수신료 중 EBS의 몫이다. 얼마 전까지 EBS 프로그램의 막간에 이런 사실을 전하는 스팟이 종종 방송되기도 했다. 직원들의 심정은 대체로 착잡했다. 자사 이기주의처럼 비춰질 것에 대한 걱정이 앞섰고, 이기주의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70원'이라는 구체적인 액수에 그동안 가까스로 지켜온 자존심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트위터에 질문을 해봤다. EBS의 적정 수신료는 얼마라고 생각하는지. 수백 건의 답변이 돌아왔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EBS가 수신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TV수신료 2,500원 가운데 2.8%인 70원이 EBS에 배분된다. 수신료는 EBS 전체 예산의 6.5%를 차지한다(2010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신료 비율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사가 바로 EBS라고 한다. 처음엔 이 사실이 부끄러웠는데 이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도 제작진들은 프로그램의 공영성이라는 가치를 놓고 눈물겹도록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수년째 동결 또는 삭감돼온 제작비를 가지고도 최고 수준의 공영성을 구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제작진들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불가사의함이 느껴질 정도다.

몇 년 전 어떤 개그프로그램에서 있었던 일이다. 개그맨들의 대사는 대략 이랬다.

"나 EBS 갔다 왔다. 연예인 왔다고 되게 좋아하던데?", "EBS?" "그래 EBS, 이발소.."

하나 더, 이번엔 영화 속 톱스타의 대사. 명대사로 손꼽히는 대사라고 한다. "좋은 얘기만 하면 재미없잖아..우리가 무슨 EBS야?"

EBS는 종종 이렇게 조롱거리가 되기도 한다. 솔직히 기분은 나빴다. 그런데 화를 낼 일은 아니었다. 연예인도 없이 착한 프로그램만 만들어내는 EBS에 대한 일종의 칭찬이라 여기고 웃어 넘겼다. 사실 EBS가 연예인 섭외 경쟁에 뛰어들만한 돈도 없지만 더 중요한 건 EBS에 주어진 사명은 분명 다른 데에 있기 때문이다. 화려함의 경쟁 속에선 결코 보이지 않는 좀 더 가난한 사람, 좀 더 약한 사람, 좀 더 소외된 사람을 위한 방송서비스를 지향하는 것이 공영방송 EBS에 주어진 사명이다.

매주 수요일은 '지식채널e' 전체 제작진 회의가 있는 날이다. 이 회의에서 거의 모든 아이템이 결정된다. 그래서 아이템을 제안하는 사람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사느냐 죽느냐 아이템의 운명을 결정짓는 건 결국 제작진 본인들이지만 제작진들의 운명은 오로지 시청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작가는 나에게 하소연하듯 말한다. '지식채널e' 작가들은 시청자들을 너무 사랑한다고. 그런데 그 사랑은 지독한 짝사랑이라고. 그 짝사랑이 자신을 너무 행복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한다는 말이었다. 이 말에 회의 분위기가 한동안 숙연해졌던 기억이 난다. 부족한 수준의 원고료를 받는 작가에게 그런 살림살이를 할 수밖에 없는 담당PD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미안했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다. 제작진의 현실적인 결핍이 더해질수록 시청자들에 대한 사랑은 더 절실해진다는 사실. EBS 프로그램의 막간에 '70원' 이야기를 할 때도 부끄러움 뒤에 남는 생각은 결국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승부하는 것 말고는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많든 적든 70원은 엄연히 시청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피 같은 돈이고, 그 돈으로 EBS가 해야 하는 일은 정말 너무나 많다. 짝사랑하는 시청자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김한중 EBS 지식채널e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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