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사극을 보면서 역사 공부를 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드라마니까, 허구니까.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보태어 이야기를 만드는 솜씨를 즐기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약간의 역사 왜곡이 있다 해도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설득력 있게 전개되기만 한다면, 즐겁게 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도가 지나치다. 사극이 아니라 사기극 수준이다. SBS가 지난 주 시작한 월화 드라마 '무사 백동수' 이야기다.
백동수(1743~1816)는 실존인물이다. 정조의 명으로 무예교본 를 편찬한 무인이다. 이 책은 한중일 삼국의 무예를 우리 실정에 맞게 체계화한 조선 무예의 완성이자 동양 무예의 보고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백동수는 가짜다. 아버지 백사굉이 역모죄로 처형당하고 어머니는 도망 중에 그를 낳다 죽었다는 설정은, 엄연히 양친 부모 밑에서 잘 자란 백동수를 천애고아로 만들었다. 기형아로 태어나지도, 판자촌에서 자라지도 않았다.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증조할아버지 백시구가 1721년 신임사화에 연루돼 억울하게 옥사했지만, 영조가 즉위하면서 복권시켜 호조판서를 추서하고 시호까지 내려 백동수 집안은 충직한 무인의 후예로 칭송을 받았다.
드라마니까 하고 참았는데, 팽형 장면에 이르자 화가 머리끝까지 뻗쳤다. 갓난아기 백동수를 역적의 아들이라고 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 던져 죽이려는 장면이 길게 이어졌다. 조선시대 팽형은 비리를 저지른 양반이 불을 대지 않은 빈 가마솥에 들어갔다 나오는 벌이지, 삶아 죽이는 게 아니다. 가마솥에 들어갔다 나오면, 죽은 사람 취급을 받았다. 가족들은 곡을 하고 장례를 치렀다. 갓난아기 팽형이라는 끔찍한 쇼를 날조한 상상력이 끔찍하다. 극중 백동수의 라이벌이 될 열두 살 소년이 친부를 죽이는 장면도 나왔다. 왜 이런 잔혹극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막장 드라마' 덕분에 시청률은 올라갔겠지만.
'무사 백동수'가 실망스러운 것은 비단 역사 왜곡이나 잔인함 때문만은 아니다. 더욱 못마땅한 것은 대단히 매력적인 인물을 겨우 그렇게밖에 못 다루는 비루한 상상력이다. 백동수는 무예의 최고 고수일 뿐 아니라 당대의 지성인 북학파 실학자 이덕무, 박제가, 박지원 등의 벗이었다. 이덕무의 처남이기도 하다. 이덕무가 자기 글에 대한 평을 부탁할 만큼 문무를 겸비했다. 는 백동수와 당시 규장각 검서관이던 두 벗, 이덕무 박제가의 우정의 결실이기도 하다. 백동수가 총괄하고, 이덕무가 문헌을 고증하고, 박제가가 본문 글씨를 썼다. 조선왕조실록에 백동수 기록은 를 편찬했다는 한 줄뿐이지만, 벗들과 당대 문인들이 남긴 글에서 그의 풍모를 알 수 있다
박제가가 쓴 글에 따르면, 백동수는 "말 달리고 활 쏘고 검을 쓰며 주먹을 뽐내는 부류, 글씨와 그림, 인장, 바둑, 거문고와 비파, 의술, 지리, 방기(方技)의 무리부터 저잣거리의 교두꾼, 농부, 어부, 백정, 장사치 같은 천인에 이르기까지 길거리에 나서서 도타운 정을 나누지 않는 날이 없었다." 사귐에 차별이 없었던 것은 서얼 출신(할아버지 백상화가 서자였다)으로서 방외인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경서와 사기(史記)를 능히 논할 만했고"(박제가), "무(武)로써 문(文)을 이루었으며"(성대중) "예서와 전서에 뛰어났고"(박지원), "다시 못 볼 기남자(寄男子)"(성해응)였다. 그런 인물을 엉터리 무협지의 주인공으로 소비하다니, 백동수가 아깝다.
오미환 문화부 선임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