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땅 어디에서나 잠시 발걸음을 멈춰보라. 그러면 곧 고뇌가 당신을 사로잡을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물었다. "우리 민족이 왜 이렇게 추락한 것인가?" 그리스 국민들은 다시금 그의 잔인한 질문을 떠올려야 할지 모른다.
지난주 그리스 사태가 한고비를 넘겼다며 전 세계 금융시장은 환호했지만 정작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앞으로 닥칠 고통과 시련에 맨몸으로 맞닥뜨려야 한다.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까지 낳았던 그리스 부채 위기를 '그리스인 조르바' 에게 물어봤다.
나: 그리스 의회는 EU(유럽연합)가 요구한 대로 긴축재정 계획을 통과시켰다. 급한 불은 끈 셈인데?
조르바: 다 시답잖은 소리다. 정치인들이란 창피한 줄도 모른다. 긴축안은 한마디로 세금은 올리고 임금은 삭감한다는 거다. 그리스에는 700유로 세대가 있다. 한 달에 700유로(약 100만원) 수입으로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런데 이번에 비과세 소득을 연 1만2,000유로에서 8,000유로로 낮췄다. 이들한테까지 세금을 걷겠다는 말이다.
나: 그리스 위기의 원인이 과도한 재정적자 때문이었으니 불가피한 조치 아닌가?
조: 답답한 말씀. 이번 위기의 원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선 유로존에 가입(2001년)하면서 경상수지 적자가 크게 늘었다. 제조업 경쟁력 세계 1등인 독일과 같은 통화(유로)를 사용했으니 수출이 힘들어질 수밖에. 1990년대 GDP(국내총생산) 대비 1.8% 수준이었던 경상수지 적자가 12.3%까지 늘었다. 이걸 메울 방법은 외채를 들여오는 길뿐이었다. 채무 원금 상환과 이자 부담, 여기에 아테네 올림픽 이후 경기 활성화를 위해 법인세를 35%에서 25%로 인하하면서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게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그리스의 주력 산업인 관광과 해운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나: 방만한 복지지출도 한 요인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조: GDP 대비 공공복지 지출이 그리스는 21.3%로 프랑스(28.4%)나 덴마크(26.1%)보다 낮다. 물론 7.5%밖에 안 되는 한국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웃음) 더구나 이번에 연금을 줄이기 위해 정년을 61세에서 65세로 늦췄다. 문제는 정치인들이 만들었는데, 그 대가는 서민들이 치르는 꼴이다.
나: 긴축 계획이 잘못됐다는 말인가?
조: 당연하지. 유로존에 남아 있는 한 통화정책은 쓸 수 없다. 환율을 올려 수출을 늘린다든지, 통화공급을 확대해 경기를 부양하는 방법은 원천봉쇄돼 있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지출을 줄이고 임금을 삭감하면 수요는 더 줄어들고 침체는 더 깊어질 것이다.
나: 유로존에는 그리스가 원해서 들어간 것 아닌가?
조: 정치인들이 원했지. 경주마처럼 단기적인 이익만 좇는 시장 논리에 홀린 것이다. 드라크마를 버리고 유로화를 쓰자 당장 금리가 떨어졌다. 주가도 올라갔다. 경제성장률도 높아져 2007년까지 연 4%로 유럽에서 가장 높았다. 나중은 생각도 안하고, 이게 바로 포퓰리즘이다.
나: 어쨌든 이번에 디폴트 상황까지 갔다면 전 세계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졌을 텐데?
조: 차라리 이 지구상의 주식과 채권을 전부 쌓아 놓고 확 불이나 질러 버려라. 그러면 이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질 테니. 금융시장의 투기꾼들이 위기를 증폭시킨다.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했던 바로 그 은행과 헤지펀드들이 그리스 채권을 공매도하고, 신용부도스와프(CDS)로 공격했다.
나: 그렇다면 이번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조: 그리스 사태는 결과지 원인이 아니다. 그리스가 어떻게 되든 세계경제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할 말이 아주 많다. 하고 싶은 말이 쌓이고 쌓였지만 내 혀로는 안 된다. 춤으로 보여주겠다.
조르바는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분노와 슬픔이 잔뜩 배어 있었다.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그의 춤사위에서 나는 "시장을 신(神)이자 선이며, 지상의 유일한 척도로 보는 한 금융위기는 언제 어디서든 다시 폭발할 것" 이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박정태 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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