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 체 게바라는 "우리는 늘 현실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가슴 속에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체 게바라의 조언을 '썰매박사' 강광배(38)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부회장처럼 아로새기고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8일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단과 함께 금의환향한 강 부회장은 "동계올림픽이 유치됐다고 해서 당장 바뀌는 건 없다. 그래도 우리의 목표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반드시 메달을 따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남은 7년이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고 힘줘 말했다.
국내 썰매 종목의 개척자인 강 부회장은 동계올림픽 개최지 발표 전까지 마음을 다스렸다고 했다. 2010년, 2014년 동계올림픽에서 두 번이나 실패했던 평창이었기때문이다. 그때마다 강 부회장은 좌절했다. 상실감이 워낙 깊었기에 이번에는 기대를 안 하려 무던히도 애썼다. 남아공 더반까지 날아가 직접 발로 뛰었지만 본인 스스로도 유치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평창은 해냈고, 강 부회장도 눈물을 흘렸다. 그는 "하늘에 떠있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강 부회장은 "일단 동계올림픽을 치르게 됐으니 썰매경기장이 건설된다. 정말 엄청난 사건이다"고 환하게 웃었다. 강씨의 입에서는 '경기장'이라는 단어가 수 차례 나왔다.
봅슬레이와 스켈레톤, 루지 등 썰매 대표팀은 대부분의 훈련을 경기장이 아닌 필드에서 해왔다. 동계스포츠 선진국이 국제규격의 슬라이딩센터에서 바퀴 달린 썰매를 탈 동안, 우리는 경사진 아스팔트를 내려오며 긁히고 넘어지고 뒹굴었다. 스피드 스케이팅과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팅은 이미 지난해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국민적 사랑을 받았지만 썰매 종목의 여건은 여전히 열악하기만 하다. 경기장은 당연히 없고, 스타트 훈련장도 지난해 겨우 생겼을 정도다.
강 부회장은 "월드컵 대회에 나가면 1위와 10위의 차이가 0.1초밖에 나지 않는다. 훈련 환경이 그 작은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여전히 썰매 불모지나 다름없는 현실이 강 부회장을 더욱 독하게 만든 셈. 강 부회장은 "일단 유망주 발굴에 힘쓰기 위해서라도 제도적인 개선을 먼저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부회장이 강조하는 것은 바로 체육 특기생 선발이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체육 특기생을 선발할 때 국내대회와 국제대회 성적을 반영한다. 그러나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은 국내대회가 없다. 동계아시안게임에서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아 성인대표팀 선수와 겨루는 국제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하면 특기생으로 선발되지 않는다. 사실상 한국 썰매 종목은 대학 특기생이 없는 셈이다.
한국 썰매 대표 선수들은 특기생이 아닌 일반 대학에 진학한 뒤 썰매를 탄다. 악조건 속에서 이들은 묵묵히 훈련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반드시 끊어야 한다고 강 감독은 힘줘 말했다.
이번 동계올림픽 유치로 경기장이 지어지고 제도 개선이 이뤄진다면 국내 썰매선수들의 실력도 자연스레 성장하지 않을까. 강 부회장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강 감독은 "여전히 세계 상위권 국가와 격차가 크다"며 "현재 세계 20위권인 국내 썰매 종목의 수준을 두 세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해외 전지훈련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강 부회장은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무조건 10위 안에는 들어야 한다"며 "평창 동계올림픽이 유치되니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는 것 같다. 앞으로 할 일이 많다"고 웃으며 말했다. 강 부회장의 마음은 벌써부터 2018년 평창 알펜시아에 가 있는 듯 했다.
인천공항=김종석기자 lef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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