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살 단발머리 소녀의 매운 손바람에 시니어팀의 맹장 여섯 명이 힘없이 밀려 났다.
지난 5일 밤 바둑TV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제 5기 지지옥션배 여류 대 시니어 연승대항전 제 6국에서 여자팀의 첫 번째 선수 최정(초단•충암중 3년)이 시니어팀의 여섯 번째 선수로 나온 ‘침묵의 승부사’ 김동엽(8단)을 물리치고 6연승을 달성했다.
한때 ‘속기의 제왕’이라 불렸던 서능욱을 비롯해 김종수, 장수영, 차민수, 김동면, 김동엽에 이르기까지 이미 50대를 훌쩍 넘어선 시니어팀 선수들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듯 입단한 지 1년 밖에 안 된 새내기 소녀 기사에게 줄줄이 무릎을 꿇었다. 특히 시니어팀 선수들은 대부분 초반에는 그런 대로 판을 잘 짜나갔지만 중반을 넘어 종반에 접어들면서 현저히 집중력이 떨어져 어이 없는 실수를 저질러 자멸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단발머리 여중생 최정은 단정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강펀치를 마구 휘둘러 ‘아저씨’들을 차례로 쓰러 눕혔다.
이로써 양팀에서 각각 12명씩 출전하는 이번 대회서 시니어팀은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김수장, 오규철, 안관욱 등 여섯 명 밖에 남지 않았다. 당장 다음 주 월요일(11일)에 열릴 제7국에 누구를 내보내야 할 지도 아직 정하지 못했다.
얼마 전에 끝난 아마연승대항전에서도 여자팀 주장 김신영의 6연승에 밀려 시니어팀이 참패했는데 이번에 프로들의 대결에서도 같은 패턴이 되풀이 될지 관심을 모은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361@hk.co.kr
■ 최정, 올 20승9패 女 최고 성적… "일반기전 타이틀까지 거머쥘 재목"
최정은 1996년10월생이다. 아직 만15살이 채 안 됐다. 충암중 3년 재학 중이다.
광주에서 살던 여섯 살 때부터 아버지의 권유로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다. 집 근처 바둑 교실에 다니며 기초를 배웠는데 몇 달 지나지 않아 오빠 언니들을 제치고 이 교실 최강자가 됐다. 인터넷에서 유창혁팬클럽 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열성 바둑팬인 아버지 최창연씨(46)는 딸의 기재를 살려 프로기사로 키우기 위해 엄마 오빠와 함께 서울로 올려 보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 2005년 1월부터 유창혁바둑도장에서 본격적인 바둑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기원 연구생 생활을 한 건 불과 1년 6개월 정도 밖에 안 되지만 그동안 연구생 내신 1위에 오르는 등 어린 나이에도 발군의 실력을 보였고 마침내 2010년 5월 입단 대회를 통과했다. 1년 후인 지난 5월 이동훈(1998년생)이 입단하기 전까지 국내 최연소 프로 기사였다.
입단 첫 해인 작년에는 아직 프로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1승 6패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여류명인전, 여류프로국수전, 지지옥션배의 본선에 오르는 등 여자 기전에서부터 서서히 좋은 성적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번 지지옥션배 6연승을 포힘해 최근에 무려 9연승을 기록했고, 얼마 전에는 올레배서 백전노장 서봉수를 물리치더니 곧 이어 여류 명인전에서 조혜연을 꺾었다.
6월말 현재 성적이 20승9패(승률 69%)로 다승 22위, 승률 26위에 올라 있다. 국내 여자 기사 중에서 최고 성적이다. 여자 기사들과 대결에서 9승 1패로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고 남자 기사들과 대결에서도 11승 8패로 앞서 있다.
스승인 유창혁 9단은 "(최정이) 기재도 있고 노력을 많이 한다. 승부욕이 나 배우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 아직 어려서 노련하지 못한 면이 있지만 앞으로 엄청나게 발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창혁과 함께 최정의 성장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최규병 9단도 "지금 중3이니까 2~3년만 더 성장하면 정말 무서운 모습으로 변할 것"이라며 "일단 여자 바둑계 정상 정복은 기본이고 일반기전 타이틀 획득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정은 입단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충암바둑도장에서 기숙하면서 연구생들과 똑같이 열심히 바둑 공부를 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시작한 여자상비군 리그에서도 3번 중 2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다. 전투력이 강하고 수읽기에 자신이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초반이 조금 약한 편이지만 후반 집중력이 뛰어 나서 역전승을 많이 거둔다고 했다.
혹시 다음 대국 때 스승인 유창혁 9단이 출전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러면 안 돼요. 사범님은 너무 강해서…"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래도 져 드릴 생각은 전혀 없는가 보다. 유창혁 9단과는 SG물산배 페어바둑대회에 함께 출전, 현재 본선 16강전에 올라 있다.
이번 대회 연승 상금으로 벌써 500만원을 확보했다. 프로 입문 이후 받은 가장 많은 상금이다. "부모님이 무척 기뻐하시겠네" "엄마가 갈비 사 주셨어요. 아빠는 전화로 수고했다며 계속 더 잘하라고 하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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