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재판은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두 살배기 딸 살해혐의에 무죄평결을 받은 '파티맘' 케이시 앤서니 사건이다. 법정 앞 500여명의 시민은 "정의가 실종됐다"고 항의했다. 언론사 인터넷사이트와 트위터에는 배심원단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 재판에 쏠린 전국민의 관심이 분노로 폭발했다.
누구나 앤서니의 유죄를 확신했다. 정황증거는 강력했다. 2008년 딸 실종 당시 그의 행동부터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딸이 안 보이는데도 22세 엄마는 춤을 추러 다녔다. 존재하지도 않는 베이비시터가 딸을 데려갔다는 둥 숱한 거짓말을 했다. 재판 때 그는 "딸이 사고로 수영장에 빠져 죽었고, 당황해 시신을 감추었다"고 주장했다. 시신에서는 익사 아닌 질식사를 암시하는 테이프가 나왔다. 마취제 클로로포름, 목 부러뜨리기 등을 컴퓨터로 검색한 흔적도 발견됐다. 변호인의 농락과 검찰의 무능으로 눈앞의 범인을 풀어준 '제2의 OJ 심슨 사건'이라고 일컫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배심원단이 이 모든 정황증거와 단죄유혹에 흔들리지 않은 것(이 때문에 대중은 분노했지만)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DNA나 목격자 등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직시했다. 앤서니가 범인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합리적으로 떨칠 수 없었기에 무죄쪽에 손을 들었다. 나중에 밝혔다시피 배심원들조차 "유죄평결을 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는데도 그랬다. 사법체계가 제대로 작동한 것이다.
앤서니의 차에서 나던 썩는 냄새, 이웃으로부터 삽을 빌린 사실을 연관시켜 그를 범인으로 단정하는 것은 인간이 진화를 통해 터득한 효율적 사고방식이다. 풀이 흔들리고 누런 갈기가 보이면 사자인지 확실치 않아도 도망가는 게 상책이다. 완벽한 정보를 수집하려는 노력은,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치러야 할 대가가 훨씬 클 수 있다. 이러한 연관짓기는 논리적으로는 오류이기 십상인데, 그래도 사람들은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믿는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카네만이 처음 제기한 '린다 문제'에서 사람들은 '학생시절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반핵시위에 동참했던 철학 전공 31세 독신녀 린다'가 ①보험회사영업사원이나 ②은행원일 가능성보다 ③여성운동에 참여하는 은행원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답한다. 그 어떤 부분집단(③)도 모집단(②)보다 클 수 없는데도 오히려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것은 린다의 사회참여 경향이다.
어떤 점에서 합리적 추론이란 본성을 뛰어넘는 두뇌의 능력이다. 학문활동, '합리적 의심'을 전제로 한 배심원의 판결이 모두 그렇다. 파티맘 무죄 평결은 우리 마음에 뿌리박힌 직관에는 반하지만 가장 추상적인 논리체계에서는 올바른 답이다. 인류의 조상에게는 제한된 정보를 신속히 연관지어 사자를 피하는 게 중요했지만, 현대 사법체계는 범인을 놓아줄지언정 억울한 유죄판결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DNA 기술의 발달로 뒤늦게 진범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사례를 봐도 직관과 합리성의 힘을 저울질할 수 있다. 앤서니의 변호사 호세 바에즈는 평결 뒤 "이 재판에서 승자는 없다"고 했다. 승자는 있다. 인간 합리성이다.
앤서니는 다음주 집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은 그래도 계속 앤서니를 비정한 엄마로 볼 것이다. 인간의 제도는 이것까지는 막지 못한다. 뒷말과 쑥덕공론도 공동체에서 자기 이득만 챙기는 이기주의자를 견제하기 위해 진화한 본성에 가까운 문화이기 때문이다.
김희원 국제부 차장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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