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 구의동 테크노마트 건물이 흔들린 사건을 둘러싸고 온갖 얘기가 나오고 있다. 여의도 63빌딩의 1.6배에 달하는 거대한 철근 건물이 그냥 흔들렸을 리 없는데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총출동해 내린 잠정결론은 영화관 스피커의 음파와 헬스클럽 러닝머신의 진동 때문인 듯하다는 것이다. 소리와 진동이 어떻게 거대한 철근 건물을 흔들 수 있느냐는 게 일반인의 의문이어서, 서둘러 사태를 수습하려는 '계산'이라는 의구심도 없지 않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만 여길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은 음파대포(Sound-Cannon)라는 무기를 개발했다. 직경 3~4㎙ 스피커 모양인데 일정 방향으로 수백 데시빌(㏈)의 굉음을 순간적으로 내뿜는다. 수십㎙ 안에 있던 적군은 고막이 터지고 머리가 깨질 듯 통증을 느낄 뿐 아니라 몸을 가누지 못하고 뒤로 자빠지기도 한다. 더욱 개량되고 작아진 음파대포(LARD)는 차량에 얹혀 시위 진압용으로, 선박에 실려 해적선 퇴치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음파의 위력은 전달되는 에너지 양에 비례하는데, 10㏈마다 에너지는 10배로 증가한다. 수백㏈짜리 음파대포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겠다.
■ 더 무서운 것은 물체의 진동(떨림)으로 발생하는 파장인데, 이 파장들이 같은 주파수로 상응할 경우(공진ㆍ共振)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SBS 프로그램에 태풍에도 꼿꼿하던 국기게양대가 산들바람에 휘청거리는 현상이 소개됐었다. 공기 움직임과 게양대의 진동수가 일치한 공진현상 때문이었다. 공중에 매달린 현수교는 공진에 특히 취약하다. 영국 맨체스터 교량이 행진하는 군인들의 규칙적인 발걸음과 공진하여 무너졌고(1831년), 미국 워싱턴주의 초대형 협교는 가벼운 바람과 공진해 주저앉았다고(1940년) 공식 발표됐다.
■ 테크노마트 건물의 안전성을 옹호하거나, 위험성을 강조하자는 게 아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상황만으로는 프로에 나올 만한 사건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세상에 이런 일이 과연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기이한 현상들에도 상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원인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 원인이 확인되지 않는 한 입주자는 물론 그곳을 찾을 시민들의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을 터이다. 인간은 '불안한 행복'보다 '확인된 불행'에 더 쏠린다고 하지 않던가. 건물 내 영화관과 헬스클럽에 '잠정 혐의'를 두고 있다는 당국의 판단을 존중하고 싶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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