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소식이다. 오랜만에 온 국민이 함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소식이 남아공 더반에서 들려왔다. 세 번째 도전 끝에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이 결정된 순간 온 국민은 하나가 됐다. 치솟는 물가걱정, 치열해져만 가는 취업 경쟁, 무더운 날씨도 잠시 잊고 그 동안 애쓴 모든 구성원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참 장한 일이다. 과거 두 차례 1차 투표에서 1등을 했으나, 2차 투표에서 패배의 쓴 맛을 보았던 씁쓸함을 한 번에 역전시킨 쾌거였다. 유효 투표 95표 중 무려 63표를 얻어 1차 투표로 결정지었으니 독일 뮌헨이나 프랑스 안시도 깨끗하게 승복할 수밖에 없다.
지구촌이 원하는 나눔과 상생
그러면 평창이 압도적으로 국제올림픽 위원들의 지지를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개별 위원들 성향과 대륙, 지역, 국가 간 역학 관계를 세심하게 분석해 치밀한 전략을 세웠던 것도 이유가 될 것이고,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의지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쇼트트랙 부문에서뿐만 아니라 피겨 스케이팅과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우리 선수들의 경기력도 큰 몫을 해냈다. 끝까지 해보겠다는 우리 의지에 감동했을 수도 있고, 혹 삼수(三修) 도전에 동정심이 작동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의 총합이라는 것이 옳겠다.
그러나 올림픽위원회 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평창이 내세운 '새로운 지평'(New Horizons) 이라는 슬로건이 아니었을까 한다. 올림픽 정신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 평창이 앞장서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를 지속적으로 실천한 것이 주효했다. 2004년부터 계속해온 '드림 프로그램'은 기후와 경제적 여건 등으로 동계 스포츠를 즐길 수 없는 나라의 청소년들을 초청해 훈련, 체험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8년간 전 세계 47개국 947명이 드림 프로그램에 참가해 꿈을 키웠고 이 중 12명은 이미 각국 국가대표로 성장했다. 그렇다. 새로운 지평이라는 슬로건과 이를 꾸준히 실천하는 모습이 올림픽위원회 위원들의 마음, 아니 지구촌 친구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동계 스포츠가 일부 선진 국가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전 세계인의 축제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이 정신은 한 나라의 동계올림픽 유치 슬로건을 넘어 지구촌의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보편적 이데올로기로 승화시킬 수 있다. 나눔과 상생, 자유와 도전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려는 인간 본성과도 맞아 떨어진다.
신자유주의 파고가 높아질수록, 수직적 세계경제질서가 공고해질수록 새로운 지평에 대한 지구촌민들의 갈망은 커지게 된다. 자원과 부의 독과점으로 세계경제가 뒤틀리고 무분별한 개발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으며, 정치권력의 집중과 세습으로 사회는 피폐화되고 인권은 유린당하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독과점과 집중을 거부하고 나눔과 상생의 길로 나서야 한다는 절박함이 퍼지고 있다.
사회도 '드림 프로그램' 선보여야
그 절박함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경직된 사회구조로 도전의 기회가 점차 원천봉쇄 되고 있는 상황에서 폐쇄된 '그들만의 리그'를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의 시선은 착잡하다. 나눔의 논리는 곧잘 색깔 논쟁이나 포퓰리즘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용자와 노동자, 교사와 학생, 공무원과 시민들이 모두 한 밥상 식구이고,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기뻐하며 부둥켜안았던 공동체의 일원임을 인식한다면 우리 사회도 진지하게 '새로운 지평'의 드림 프로그램을 작동해야 한다. 올림픽위원회 위원들에게 호소했던, 아니 지구촌민들에게 심어 주었던 '새로운 지평'의 꿈을 솔선하여 이루어나가야 한다.
보다 성숙한 나눔과 상생, 자유와 도전의 사회를 2018년 3월 지구촌민들에 자랑스럽게 보여주자.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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