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가지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까지 돈과 출세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돈과 출세를 포기하는 대신 마음의 평화를 택할 것인가?' 이 두 가지 중에서 한국인들은 무엇을 선택하고 있을까? 경쟁에서 패배하거나 낙오하면 생존마저 위태로워지는 한국적 현실에서, 지금까지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사람다운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전자를 선택해왔다. 2008년 미국의 지가 한국인이 '일 중독, 자녀교육 중독'에 빠져 있다고 따끔하게 지적했던 것은 그래서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후자를 택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즉 한국에서도 점차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 느긋하고 여유 있는 삶을 추구하는 무리 또는 그런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인 다운시프트족(downshift족)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다운시프트란 자동차를 '저속 기어로 바꾼다'는 뜻이다.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유럽의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빡빡한 근무 시간과 고소득보다는 비록 저소득일지라도 자기 마음에 드는 일을 하면서 느긋하게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이들을 다운시프트족이라고 한다. 이들은 금전적 수입, 사회적 지위나 명예보다는 시간을 더 중요시한다. 직장생활에서도 해외연수나 인센티브, 능력별 승급제보다는 안식년 휴가제를 선호한다. 이들은 직장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이 조화를 이루는 삶의 공간, 즉 삶의 여유와 만족 등 개인생활까지 충족시켜주는 곳이기를 원한다.
다운시프트족은 주말 및 야간근무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을 하나의 상품으로 여기며 오로지 자기개발에 몰두하는 예티족(Yetties)과는 정반대의 인간형으로, 삶의 여유나 자아실현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초고속으로 굴러가는 무한경쟁사회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사회집단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돈과 출세에 목을 매는 예티족에게 '그래! 너희는 그렇게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이 정신없이 뛰어다녀라. 우리는 삶을 즐기면서 느릿느릿 살겠다'고 외친다.
한국에서도 20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다운시프트족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채용정보 전문 검색사이트 코리아잡서치에서 직장인 신조어들을 모아 이 중 20대 직장인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단어를 조사한 결과, 다운시프트족이 당당하게 1위를 차지했다. 다운시프트는 어떻게 보면 치열한 경쟁을 강요하는 세상에 대한 일종의 개인적, 수동적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한국인들에게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규칙을 철폐하지는 못할지라도, 그런 잘못된 규칙에 인생을 헌납하지는 않겠다는 소극적인 저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다운시프트족이 돈과 출세에 무섭게 올인하는 이들보다는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건강한 편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다운시프트족이 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제한적이다. 생존경쟁에 전력하지 않고도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는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탓이다.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다운시프트족은 잘못된 사회 자체를 바꾸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는 그다지 큰 기여를 하지 못한다. 따라서 여건이 되는 사람들이 다운시프트족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을 나무랄 까닭은 없겠지만, 잘못된 사회현실을 바꾸는 것이 근본해법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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