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노프(러시아제 폭격기)다!"
하늘을 쳐다보던 엄마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자, 공기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산 위로 달린다. 어른도 아이를 업은 채 동굴을 향해 필사적으로 뛴다. 무덥고 좁은 동굴 안, 아이들의 눈에 두려운 빛이 가득하다. 열 살짜리 소녀 카카가 "여기 싫어요"라며 투정을 부리지만, 그들이 목숨을 부지할 피난처는 이곳밖에 없다. 정부군의 공습 한달 째, 수단 중부 르웨르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은 이미 일상이 돼 버렸다. 폭격기가 출격하는 낮 시간은 이들에게 지옥이다.
5일 인터내셔널해럴드트리뷴(IHT)은 수단(북수단) 정부군의 공습 때문에 해가 뜨면 가재도구를 지고 산 속으로 피난을 가야 하는 누바산맥 지역 주민들의 참상을 전했다.
여섯 아이의 엄마 파티마도 수주일 째 동이 트면 담요와 식기만 챙겨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선다. 파티마와 아이들이 향하는 곳은 남수단과 북수단을 가르는 누바산맥 기슭의 300m 높이 언덕. 이들은 이렇게 집을 버리고 산으로 대피했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폭격으로 황폐해진 마을로 돌아온다.
정부군의 공습은 9일 남수단의 분리 독립을 앞두고 남수단에 찬성하는 반군을 뿌리뽑기 위한 작전이다. 반군을 무장해제한다는 명목으로 북수단군은 르웨르 인근 마을과 농토를 무차별 폭격했고, 이 과정에서 민간인 수백명이 숨졌다. 누바산맥 인근은 내전에서 남수단 편에 섰던 반군들의 본거지였지만, 정작 남ㆍ북수단 분리 과정에서는 북수단으로 편입됐다.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정부가 남수단을 잃은 복수를 우리한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포성이 멈추지 않는 누바산맥 너머, 수단에서 분리돼 신생 독립국으로 출범하는 남수단의 상황도 동굴 속에 내몰린 르웨르 사람들처럼 암울하다. 수십년 내전(1차 1955~72년, 2차 1983~2005년)과, 유혈사태를 겪은 뒤 국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얻었지만 신생 공화국을 어떻게 꾸려 나갈 것인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인 수단에서 분리된 만큼 남수단의 면적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합한 것보다 크지만 포장된 도로가 거의 없고, 초등학교 졸업률이 1%가 안 될 정도로 교육 수준도 낮다. 문맹률은 85%. 의료시설 등 사회적 인프라도 전무한 상황. 그러나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할 중앙정부는 행정전문가가 아니라 투사들로 채워졌다.
국제사회의 압력에 못 이겨 마지못해 분리독립을 승인한 북수단의 훼방도 짐이다. 유전지대가 대부분 남수단에 있지만, 이를 처리할 정유시설이 북쪽에 위치해 신생국 운영자금을 마련하려면 북수단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누바산맥에 대한 공습을 주도하고 있는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은 "석유 이익을 나누지 않으면 송유관을 폐쇄하겠다"며 신생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알 바시르는 다르푸르 내전에서 대량학살을 지시한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국제수배자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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