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는 하비 밀크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동성애에 대한 미국 사회의 여러 생각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영화다. 동성애자인 뉴욕의 회사원 하비 밀크가 분방한 도시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시의원에 당선됐다가 동료 의원에 의해 살해되기까지의 과정을 다이내믹하게 그린다. 인종, 나이, 종교, 성에 상관 없이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 싶어 시의원이 된 그가 결국 의회 진출 1년 만에 살해된 것은 동성애에 대한 미국 사회의 완고하고도 혼란스러운 태도를 보여준다.
치밀한 전술, 반대파 설득 성공
밀크가 살해된 지 33년이 흐른 지금, 동성애에 대한 태도가 많이 누그러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더 많다고는 할 수 없다. 제법 개방적인 사회라 하더라도, 이성애자가 동성애를 끌어안기 어려운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최근 동성결혼을 허용한 평등결혼법이 뉴욕주 상원을 통과한 것은 그래서 미국에서 큰 뉴스가 됐다. 그 과정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의 태도였다.
그는 가톨릭 신자다.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불교든 종교를 믿는 사람이 동성애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쿠오모가 지난해 11월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공약으로 걸었을 때, 그가 과연 약속을 지킬지 의심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뉴욕주 상원은 보수적인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으며 같은 법이 2년 전 발의됐다가 부결된 적이 있기에 통과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쿠오모가 선택한 것은 설득이었다. 자신이 속한 민주당 내 반대파에 대해 쿠오모는 그 의원과 특히 친한 의원을 보내 설득하도록 했다. 공화당의 반대파를 설득할 때는, 그들을 수시로 초청해 동성 커플의 사연을 청취하게 하고 정치헌금 기부자를 움직여 그들의 마음을 바꾸었다. 자신의 종교인 가톨릭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뉴욕 대주교도 만났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그 단순한 행동이 반대자를 돌아서게 한 것이다.
이런 작업 끝에 평등결혼법이 통과하자 언론은 그의 정치적 능력 혹은 수완을 평가했다. 그러나 정치력의 측면에서 보든, 신념의 실천이라는 측면으로 보든 법안의 통과와 관련된 쿠오모의 태도에서는 생각할 게 있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다. 그는 자신의 종교와 정치적 신념을 동일시하지 않았다. 미국은 기독교 우파에 의해 정교분리 원칙이 흔들리고 있지만 쿠오모는 정교분리를 어기지 않았다. 지도자가 자신의 종교에 따라 세상을 보고 발언해 갈등을 초래한 것을 보아온 우리에게는 쿠오모가 새삼 신선하다.
종교분리의 이념을 조금 넓히면, 종교가 다르다고 사람을 차별할 수 없다는 것이니, 결국 사람을 동등하게 보려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쿠오모는 "뉴욕 땅 위의 모든 존재는 동등한 법적 권리가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화당의 스티픈 샐랜드 의원이 찬성표를 던진 뒤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리가 있다고 판단했으며 결혼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아무래도 쿠오모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뉴욕의 모든 존재를 법적으로 동등하게 본다면 이제 쿠오모는 소수자,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 등 약자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더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오바마 러닝메이트로 부상
"평등결혼법에 찬성하면 다음 선거에서 낙선시킬 것"이라는 보수 유권자의 협박을 떨치고 일부 공화당 의원이 찬성표를 던지게 만든 쿠오모의 정치력은 사실 놀라운 것이다. 반대자를 자기 편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현실 정치인에게 특히 필요한 능력인데 쿠오모는 치밀한 작전을 통해 그런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내년 대선에서 오바마의 러닝메이트로 부상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인간이 대체로 이중적이고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에 쿠오모를 섣불리 칭찬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이번에 드러난 그의 신념과 정치력이 조금은 부럽다.
박광희 국제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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