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읽어주는 아빠의 저음이 아이에 안정감 줘"
아빠가 변했다. 소프트웨어 판매업체에 다니는 황철규(39)씨는 퇴근 후 TV를 끼고 앉아 휴식을 취하는 아빠였다. 맞벌이 하던 아내는 퇴근 후 살림에다 활달한 두 아들의 육아까지 혼자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아내의 권유로 아빠표 독서교육을 시작한 지 4~5년. 그는 '아빠표 독서교육의 달인'으로 거듭났다. 처음에 책을 붙잡으면 10분도 집중하기 어려워했던 아이들과 매주 2~3회 베갯머리 독서를 한 결과 아들 성재(10)와 성민(7)이는 최근 한 병원에서 실시한 집중력 검사에서 상위 5% 판정을 받았다. 황씨는 자신의 성과를 바탕으로 2009년부터 아빠 표 독서교육 커뮤니티 우리아빠(www.mydad.co.kr)도 만들었다. 책을 사주기는 쉬워도 읽히긴 어렵다는 직장인 아빠들을 위해 2일 황철규씨를 만나 아이와 책 읽기 요령을 들었다.
TV를 끄면 시간은 늘 있다
황씨의 첫번째 육아원칙은 '주중에 TV를 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많은 아빠들이 육아에 관심은 있어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피곤하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라며 "하지만 일상을 살펴보면 퇴근 후 TV만 켜지 않아도 30분 이상의 독서시간이 확보된다"고 말했다. 황씨도 야근, 회식, 모임에 시달리다 보면 9~10시 퇴근은 흔한 일이지만 퇴근 후 아이가 깨어 있으면'억지로라도'아이들 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2권만 읽자'라고 약속하고 책을 읽는 것은 습관을 들이면서, 당초 책을 읽기 싫어했던 아이들이 '관행'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책을 많이 사주면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읽고 싶어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황씨는 "대부분 아이들은 글씨를 읽기 싫어하고 어려워한다"며 "먼저 부모의 목소리로 읽어 주는 책 내용을 듣고 싶어 하도록 만들고, 취학 전 연령 때에 잠자리에 들기 전 책을 '듣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만들어야 독서습관이 생긴다"고 조언했다.
아빠효과, 엄마효과 다르다
베갯머리 독서습관은 엄마가 대신해도 되는 거 아닐까. 황씨의 대답은 노(No)다. 아이들은 '내가 뭘 하면 좋아하고, 내 생활에 얼만큼 관심이 있는지'에 대해 엄마보다 아빠의 반응에 더 민감하다는 것이다. 그는 "처음에 쑥스러워도 자꾸 연습해 책 속 등장인물의 말을 실감나게 연기하고, 그림 속에 나오는 상황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면서 읽어 주고 대화했다"며 "같은 책도 아빠가 읽어 주는 것과 엄마가 읽어 줄 때 아이들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고, 기억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황씨의 이런 분석은 일리가 있다. 실제 한국메사연구소는 "아빠와 대화는 유아들에게 내재된 창의성을 더 높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또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아빠 목소리를 더 좋아한다는 것은 교육계의 정설이다. 아이가 돌이 지나면서 엄마의 고음에 더 쉽게 반응하며 엄마를 따르지만, 기본적으로 저음을 듣기 좋아하고, 아빠와의 대화에서 심리적 안정을 얻는다.
황씨는 "동생 성민이의 경우 잠시도 가만히 있으려 하지 않아 책 읽는 습관 들이기가 쉽지 않았다"며 "지겨워 할 때는 책으로 탑을 쌓고 기찻길을 만들고 몸으로 놀다 다시 책을 읽어 주었다"고 말했다. 7세 성민이의 집중 시간은 2~3년 사이 10분, 30분, 1시간 등으로 차츰 늘어났다.
책을 넘어 나들이 떠나자
황씨의 마지막 비결은 다양한 독후활동과 주말 나들이다.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나들이는 서점 나들이. 나른한 주말 함께 서점을 가면 아이들의 독서욕구도 자극 되고, 읽고 싶은 책을 3~4권 고르게 된다는 것. 이렇게 모은 책만 1,500여권에 이른다. 또 야외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공룡박물관, 과학관, 산천어 축제, 나비 축제, 양떼목장, 남해, 한라산 등 아이들이 책을 통해 관심 갖는 소재가 있다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이렇게 '모범아빠'로 살다 보면 지치지 않을까. 그는 "일정 궤도에 오르면 읽지 말라고 해도 아이 스스로 혼자 책을 읽고 싶어할 테니, 그 전에 조금만 아빠의 노력과 희생을 발휘해 보세요"라고 답했다.
글ㆍ사진=김혜영기자 shine@hk.co.kr
■전문가가 권하는 독서법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녀가 집에서는 말 잘 듣고 착한 아이인데 학교에서 유독 비뚤어진 행동을 해 당황한 경험이 한두 번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학원이나 또래들끼리 보내는 시간은 늘어난 반면 부모와의 교감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한우리 독서토론논술 이언정 연구원은 "독서 교육을 통해 대화시간을 늘리면 자녀가 평소 말하지 않던 욕구를 파악하고 인성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 연구원은 "아이들이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경우 자신의 욕구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해서일 경우가 크다"며 "자신의 불만이나 불안함 또는 인정 받고 싶은 무언가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으나 그 표현 방법이 서투르기 때문에 폭력이나 짜증 등의 감정으로 표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독서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돕고, 어휘력을 늘려 주는 것이 인성교육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또래 아이들의 다양한 스토리가 담긴 책을 통해 올바른 감정표현이 어떤 것인지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독서 습관 자체가 감정이 쉽게 폭발하는 아이에게 침착성과 집중력을 길러주는 것도 장점이다.
그는 "우선 독서는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할 수 있게 해 준다"며 "책 속에 등장한 타인의 상황을 보며 아이와 '나의 경우라면 어떨지' 끊임없이 대화해 봄으로서 자기 반성 혹은 자기 계발을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독서를 통하여 다른 세계를 배울 수 있다. 나와 다른 사람과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배울 수 있다는 것. 몰랐던 문화를 알아 가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나와 다른 사람과 세계를 받아들이고 관용할 수 있는 태도도 키우게 된다.
이 연구원은 인성교육을 위한 올바른 독서법으로 ▦어린이의 고민을 담은 좋은 책을 고를 것 ▦가급적 부모와 함께 읽고 대화할 것 ▦ 독후감을 써 다짐하는 기회를 만들 것 등을 추천했다.
그는 "어린이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인 부모가 독서 활동에 참여하여, 자녀의 생각과 바람 등을 이해면 어린이들의 욕구를 바르게 이해하고, 옳은 방향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도우면 인성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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