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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흡혈족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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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흡혈족의 후예

입력
2011.07.04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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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조선을 다녀간 서양인들의 눈에 조선의 관리는 백성들의 피를 빨아 먹는 흡혈귀로 묘사된다. 그들은 관직에 오른 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백성들의 고혈을 짜냈다. 공복과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요즘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대단히 부패했다. 그들은 본인과 가족, 문중의 안위를 걱정했다. 나라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벼슬길에 오르면 집안 대소사를 책임졌다. 집안을 먹여 살려야 했다. 서양인들은 관리들의 부패로 조선의 농민들이 열심히 농사짓지 않는다고 봤다. 탐관오리들이 뜯어갈 것인데 땀 흘려 일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자기가 먹을 정도만 수확하는 것이 현명한 방책이었다.

되살아난 흡혈의 시대 추태

고을의 군수나 사또가 새롭게 임명되면 백성들은 그가 임지에 도착하기 전에 공덕비를 세웠다. 공덕비를 세우면서 살 살 거둬가기를 빌었다. 서양인들의 눈에 구한말 조선에는 피를 빨아먹는 사람과 피를 빨리는 두 종류의 인간형이 존재했다. 그들은 그래서 조선이 필시 망할 것으로 보았다. 서양 선교사들이 남긴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공직 부패 문제로 나라가 어지럽다.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냄새만 요란하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실체가 상당부분 드러나고 있지만, 검찰 수사는 오리무중이다. 금융정책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연루되어 있는데도 시원하게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국토해양부에서는 목요일과 금요일 진행되는 1박2일짜리 지방 연찬회 모임이 유행했다. 경비는 업자들이 부담했다. 주말에도 연회는 이어졌다. 전직 국세청 고위공직자가 대기업으로부터 자금을 수수했다. 자문료 명목의 새로운 재테크 방식이다. 한 달에 5,000만 원씩 5년간 모두 30억 원을 받았다.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방식은 구한말과 달라졌지만, 이런 사례들은 공직을 '해먹는' 자리로 인식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공직에 대한 소명의식이 추락했다. 다들 하니까 큰 문제없겠지 하는 집단무의식의 심리도 있다. 정부 예산이나 세금을 눈 먼 돈으로 생각하고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라고 생각한다. 흡혈의 시대와 다를 바 없다. 정글의 법칙이 통용된다. 약육강식의 시대이다. 정부 예산은 국민들의 피와 땀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권한이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주물럭거려서는 곤란하다. 직접 백성들의 피를 빨아 먹지는 않았지만, 기업과 업자들에게 흡혈의 빨대를 꼽았다. 밥과 술을 얻어먹었다. 정체가 의심되는 돈도 받았다. 돈을 받았다는 것은 재임 중 그것의 몇 배 이상 정부 돈이 날아간 것으로 봐야 한다. 제대로 했다면 그 돈은 국고로 들어왔을 돈이다. 그 만큼 국민 세금 부담이 늘어났다고 봐야 한다. 기업에 있는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기 때문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서로서로 아껴주고 당겨줬다고 봐야 한다. 공직만 부패한 것도 아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그룹 내의 부정부패를 문제 삼아 최고경영진을 문책했다. 민간회사에도 해먹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공직 부패 없어야 사회도 발전

공직사회가 부패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내 신뢰의 싹을 잘라내는 행위이다. 사회 통합은 고사하고 공동체의 해체를 재촉하는 지름길이다. 이런 상태라면 사회 발전은 요원하다. 민주주의의 토대를 닦는다는 말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사회적 자본은 증가하기 어렵다. 공직부패가 만연한 곳에서 서로를 신뢰하기는 불가능하다. 구한말에 흡혈하던 사람들의 후예가 창궐하고 있다. 대통령 입에서도 "나라가 썩었다"는 말이 나온다.

공직사회는 왜 백년하청(百年河淸)인가? 정권말기에 늘 이뤄지는 공직기강 확립차원에서 접근할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부패 고리는 그만큼 뿌리 깊고 단단하다. 뼈저린 반성이 필요하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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