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첫 태풍인 메아리가 지나갔다. '6월의 태풍' 메아리로 9명이 목숨을 잃었고 10만5,000여 가구가 정전을 겪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태풍의 세력이 약해져 더 큰 피해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올 여름 또 얼마나 강한 태풍이 달려들 지 모른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로 태풍이 점점 강해지고 있고, 한반도에도 달리는 열차도 날려보낼 슈퍼태풍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구온난화가 한반도에 슈퍼태풍 불러
전세계적으로 태풍이 강해지고 있다. 미국국립대기연구센터에 따르면 최대풍속 초속 56m가 넘는 태풍이 1970년대에는 연평균 11회 정도에 머물렀는데 1990년 이후엔 18회로 증가했다. 풍속이 초속 50m가 넘는 태풍은 콘크리트로 만든 집도 무너뜨릴 수 있다.
한반도로 오는 태풍 역시 강해졌다. 국가태풍센터의 분석 결과 이제껏 재산피해를 많이 낸 태풍 10개 가운데 5개가 2000년 이후 발생했다. 허창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이전에는 주로 저위도 지역에서 태풍의 풍속이 최대였지만 최근에는 한국이 있는 중위도에서 풍속이 가장 세진다"며 "지구온난화로 이 지역이 급속하게 더워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한반도 연안의 수온은 1969년에서 2004년 사이 1.1도 올랐다. 지구 평균(0.5도)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태풍은 중심의 최대풍속이 초속 17m이상인 열대성 저기압을 말한다. 북위 5~20도, 해수면 온도가 26도 이상인 바다에서 발달한다. 따뜻한 저위도 바다에서는 수분이 많이 증발한다. 증발한 수분은 대기 중에 수증기로 머물다가 일정 고도에서 빗방울이나 비구름의 액체상태로 변한다. 기체에서 액체로 바뀔 때 열이 방출되고 이 열이 태풍의 에너지가 된다. 따라서 태풍은 수증기를 많이 머금을수록 강해진다. 저위도에서 생긴 태풍이 북상하다가 소멸하는 건 중위도 지역의 해수 온도가 낮아 에너지의 원천인 수증기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서다.
지구온난화로 중위도의 해수 온도가 오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만큼 증발한 수증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정부간기후변화협력기구(IPCC)는 2100년경 해수의 수온이 2~4도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에 상륙하는 태풍의 위력은 엄청 커진다. 권민호 한국해양연구원 기후재해연구부 연구원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해봤더니 지금보다 태풍의 강도가 18% 세지는 것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한반도에도 슈퍼태풍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10년 안에 한반도에도 슈퍼태풍이
슈퍼태풍은 중심 최대풍속이 초속 65m 이상인 태풍을 말한다. '6월의 태풍' 메아리와 비교하면 최대 풍속은 두 배 이상 빠르고 위력은 10배 더 세다. 슈퍼태풍은 달리는 열차를 탈선시키고, 아파트 거실의 두꺼운 유리창도 깨뜨릴 수 있다.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를 물에 잠기게 한 카트리나가 대표적인 예다. 카트리나가 상륙할 당시 최대풍속은 초속 70m였다.
슈퍼태풍이 국내에 온 적은 아직까지 없다. 2003년 태풍 매미의 최대 풍속이 슈퍼태풍에 조금 못 미치는 초속 60m를 기록했을 뿐이다. 문일주 제주대 해양과학부 교수는 "한반도 연안의 온도가 올라 대만과 같은 아열대 기후가 되면 슈퍼태풍이 올 가능성도 매우 커진다"며 "10년 안에 한반도에 슈퍼태풍이 닥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대만에는 2,3년에 한 번씩 슈퍼태풍이 상륙한다.
문 교수는 한반도 연안의 온도가 3도 더 올라 대만과 비슷해진 상황에서 한국에 지금까지 가장 큰 피해(사망ㆍ실종 246명, 경제적 손실 5조원)를 입혔던 루사가 북상하면 어떻게 될지 실험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루사는 중심의 최대 풍속이 초속 70m인 슈퍼태풍이 돼 한반도에 상륙했다. 2002년 당시 루사의 최대풍속은 초속 56m였다. 문 교수는 "경남 통영시에선 2.7m 높이의 해일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왔다"며 "부산, 마산 등 연안 도시 일부가 물에 잠기고 강풍과 호우로 나라 전체가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슈퍼태풍 등 재난대비체계 정비해야
사실상 슈퍼태풍을 막을 인위적인 방법은 없다. 슈퍼태풍에 대한 대비를 잘해두는 게 최선이다. 슈퍼태풍이 종종 상륙하는 대만에선 태풍이 오면 위험지역의 주민을 미리 대피시킨다. 태풍 강도에 따라 하루 전에 전국에 비상 휴무일을 정하는 등 재난대처에 철저하다. 건물을 지을 때도 일본과 비슷한 수준의 내진설계를 한다. 강풍에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재난대처는 대만, 일본과 비교해 많이 미흡하다고 입을 모은다. 2003년 태풍 매미가 한국에 상륙하기 전 훨씬 강한 위력으로 일본 열도를 강타했지만 사망자 1명에 재산피해액은 500억원에 그쳤다. 반면 당시 한국은 132명이 사망했고, 4조?이상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김주홍 국립대만대 대기과학과 초빙교수는 "지난해 9월 태풍 곤파스는 서울 광화문 일대를 침수시킬 정도로 폭우를 쏟았다. 만일 대만이었다면 미리 비상 휴무 조치가 내려졌을 것"이라며 "한국에도 슈퍼태풍이 올 수 있는 만큼 재난대비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허 교수는 "건물을 지을 때도 재해영향평가를 넣어 태풍으로 인한 홍수나 해일 등에 잘 견딜 수 있는지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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