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덜도 말고, 딱 이대로만 운영됐으면 좋겠습니다."
전남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 신촌마을에서 7년째 무인(無人)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박충렬(52) 이장의 소망은 소박했다. 그는 "마을 주민이 모두 손님이고 주인인데 (이 가게가)내집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냐"며 "그저 지금처럼 편안하게 가게를 이용하면 그 뿐"이라고 말했다.
박씨가 무인가게 문을 연 것은 2005년 5월. 마을회관에 딸린 16㎡ 남짓한 매점을 운영하던 한 주민이 적자에 시달리다 1년 만에 문을 닫은 이후 마을 주민들이 물건을 사러 4㎞ 떨어진 면 소재지까지 나가야 하는 불편을 겪은 게 계기가 됐다. "손해를 보더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며 사비 300만원을 들여 선반을 만들고 물건을 들여놓아 가게를 꾸몄다. 가게엔 지폐금고와 동전바구니, 외상장부 등을 놓아두어 손님들이 양심에 따라 알아서 물건값을 지불하도록 했다.
박씨의 실험은 성공이었다. 처음 두 달간은 적자를 봤지만 이후 매달 10여만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이후 매스컴을 통해 '아름다운 가게'로 알려지면서 이듬해 8월 한 기업의 TV광고에까지 등장하는 등 유명세를 탔지만 오히려 절도범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실제 박씨는 도둑의 발길이 끊이지 않자 2006년 11월 CC(폐쇄회로)TV를 설치했다가 일부에서 비난이 일자 이틀 만에 떼어내 불에 태우기도 했다. 그 후 오히려 생필품 가짓수를 더 늘려 진열했고, 마을 주민들에 대한 변치 않은 믿음 때문인지 단 한 건의 도난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엔 출향인사들과 장성군청,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7,000만원을 모아 무인가게와 마을회관을 새로 지었다. 지폐교환기도 설치해 잔돈을 쉽게 바꿀 수도 있고, 화장실도 수세식으로 깨끗하게 고쳐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덕분에 가게를 보러 온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월 평균 100만원이던 매출도 2배 이상 늘었다. 박씨는 "'1,000원어치 사고 1만원을 두고 가니 좋은 곳에 쓰라'는 메모를 돈통에 넣고 가는 관광객들도 많다"며 "양심이 깃든 돈을 볼 때 마다 아직 우리에게 믿음과 정직이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뿌듯해진다"고 말했다.
장성=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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