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축제기간이라지만 불꽃이 주중 밤하늘을 장식할 줄 몰랐다. 넋을 놓고 하늘을 보다 의문이 들었다. '개막식 날도 아니고 주말도 아닌데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었나?' 머리 속에 물음표만 남긴 채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 출장의 마지막 밤은 흘러갔다.
의문은 서울로 돌아와서야 풀렸다. 칸영화제에 참가한 한 영화인의 전언을 통해서였다. 그날 밤 생각지도 못했던 불꽃은 중국 영화계에서 쏘아 올린 것이었다. 자신들이 그날 개최한 파티를 자축하기 위해서였다. 폭죽 값만 다른 나라 영화계 파티 비용에 해당하는 1억원 가량이 들었다 한다. 역시 대국은 달랐다.
지난해 칸영화제 때 전해들은 이야기도 중국영화의 최근 위세를 가늠케 한다. 중국 측이 영화제 기간 최고급 호텔에서 파티를 연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대만 영화계는 화들짝 놀랐단다. 본국과 긴급 연락이 오고 갔단다. 결국 대만은 예약해둔 조금 낮은 등급의 호텔 파티를 취소하고 중국측이 예약한 호텔에서 부랴부랴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대만의 발 빠른 대응에도 불구하고 중국측 파티에 사람들이 더 몰렸다고 한다. 사소한 것에도 자존심을 걸던 냉전시대 체제경쟁의 끝물을 보며 슈퍼파워 중국이 세계 영화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새삼 실감했다.
지난 1일 중국 공산당 90주년을 맞아 제작한 '건당위업'이 중국에서 흥행몰이 중이라고 한다. 8억위안(1,330억원)을 들였고, 류더화(劉德華)와 저우싱츠(周成馳) 등 스타 배우들이 대거 동원됐다. 중국 공산당 창당을 맞아 제작됐다지만 규모가 놀랍다. 8억위안이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급 제작비다. '해운대' 같은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10개 가량 만들 수 있는 돈이다.
'건당위업'을 특별한 시기에나 벌어지는 일회성 일로 치부하기엔 최근 중국영화의 상업적 약진이 심상치 않다. 제작비 200억원, 300억원대 영화가 심심찮게 스크린에 투영된다. 우위썬(吳宇森)과 쉬커(徐克) 등 왕년의 홍콩 명장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 몇 년 전까지 조악하게만 보였던 중국산 컴퓨터 그래픽도 요즘 경쟁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규모는 이미 한국을 추월했고, 기술적 완성도에서 중국이 앞설 날도 멀지 않았다.
2005년 만난 '첨밀밀'의 홍콩 감독 천커신(陳可辛)은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홍콩 영화는 없다. 홍콩 감독들은 본토를 겨냥한 대작 영화를 연출하거나 아니면 감독을 그만 두어야 할 것이다." 멜로 영화에서 남다른 감성을 발휘했던 그는 자신의 예언처럼 2007년 대작 사극 '명장'을 연출했다. 홍콩영화처럼 세계 영화 시장도 중국이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갈 날이 곧 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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