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과천에 사는 주부 김모(38)씨는 최근 정보교환 사이트 '과천사랑'을 통해 산지로부터 직접 감자, 사과, 마늘, 양파를 주문했다. 그는 "동네 주부들끼리 온ㆍ오프라인을 통해 '누구네 친정이나 시댁에서 뭐 땄다'는 정보를 나누는데 빠뜨리지 않고 챙겼다가 공동 구매를 한다"고 했다.
김씨가 처음부터 산지거래를 했던 것은 아니다. 마트에서 구입하기엔 너무 가격이 비싸 싼 곳을 찾다 보니 이 사이트를 발견하게 된 것. 그는 "마트 가는 일이 전보다 크게 줄었다"면서 "산지에서 사면 가격도 3분의 1이상 싸기 때문에 크기가 작고 흠은 좀 있어도 그럭저럭 먹을만하다"고 말했다.
1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살인적 고물가는 서민들의 생활까지 바꿔놓았다. 가급적 안 사고 덜 쓰는 건 기본이고, 식료품비 교육비 의복비 등 필수 지출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 물가와의 전쟁은 정부만 하는 게 아니라, 서민들이 더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것이다.
고물가는 마트 진열대의 상품종류도 바꿔 놓았는데, 요즘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조각상품'이다. 1일 롯데슈퍼에 따르면 '절반 바나나'(293.5%), '1/4수박'(37.6%), '990당근'(92.9%), '절반 고등어'(550.7%) 등 작은 포장 상품의 올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평균 50% 이상 올랐다. 쌀 등 곡물류 역시 3kg(83.8%), 5kg(56.0%) 등 적은 용량 제품은 지난해보다 매출이 60% 가까이 증가한 반면 10kg(-1.4%), 20kg(-14.0%) 등 큰 용량 제품은 매출이 줄고 있다. 롯데슈퍼 관계자는 "지난해만 해도 1/4수박 이나 절반 고등어는 찾는 소비자가 거의 없었다"며 "하지만 요즘 생선, 수박 등 인기 상품은 조기 품절될 정도"라고 말했다.
사실 조각상품은 온전한 상품에 비해 단가가 비싼 편. 하지만 일단 절대금액 자체가 저렴하니까, 남아서 버리느니 나중에 다시 사더라도 서민들은 일단 조각상품을 찾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본다면 더 많은 단위비용을 치르는 셈이다. 가히 내핍의 악순환이다.
직접 자기 손으로 해결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생활용품 유통회사 다이소에 따르면, 수납공간, 쿠키ㆍ케이크 등을 직접 만드는 DIY(Do it yourself) 관련 제품의 올 상반기 판매량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이상 증가했다. 안웅걸 다이소 이사는 "DIY 재료와 관련 도구들이 월 300만 개 이상이 팔리고 있다"며 "일본은 몇 년 전부터 DIY 제품 판매가 크게 늘었던 반면 우리는 별 반응이 없다가 지난해부터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다달이 DIY 관련 새 제품을 30~ 40개씩 내놓고 있다.
아낄래야 아끼기 힘든 것이 자녀 교육비. 안 먹고 안 쓰는 한이 있더라도 애들 교육비 만큼은 줄이지 않으려는 게 부모들의 심정이지만, 고물가는 이런 '교육열'도 식혀 놓았다.
직장인 최모(36)씨는 최근 초등학생 딸의 딸의 미술학원, 외국어 개인 교습을 그만두고 '방과후학교'의 미술, 외국어 강좌에 등록했다. 최씨는 "가르치는 내용이나 학습 효과를 생각하면 학원이나 개인교습이 낫겠지만 비용은 3분의 1로 줄었다"며 "딸은 유치원 때도 3,4개 학원을 보냈지만 유치원생 아들은 비용 부담 때문에 2개만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경기 고양 일산동구청에 따르면 최근 끝난 3분기(7~9월) 유치원생ㆍ초등학생 대상 강좌 수강생 모집에 평소보다 30% 이상 많은 지원자가 몰렸다. 구청관계자는 "원어민 교실, 과학교실 등은 한달 수강료가 보통 2만원 정도인데다 원어민이나 전문가로부터 배울 수 있어 인기가 좋다"며 "정원이 20명인 과학교실은 이번에 지원자가 너무 많아 강사로부터 동의를 얻고 29명으로 강의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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