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마을을 찾아서/한필원 지음/휴머니스트 발행ㆍ520쪽ㆍ2만8,000원
26년간 전국의 전통마을만을 찾아 다닌 이가 책을 냈다. 한필원 한남대 건축학부 교수는 1985년 대학원 재학 시절 서울 북촌 한옥마을 실측을 하면서 전통마을에 푹 빠졌다고 했다. 그는 "크고 화려한 현대 건축물이 땅에서 우리를 떼어놓은 반면 전통마을을 다니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땅과 건축, 그리고 인간의 진정한 관계를 발견하게 됐다"며 전통마을 예찬론을 펼친다.
그가 추려낸 전통마을은 대구 옻골마을, 경북 성주군 한개마을, 전남 순천시 낙안읍성, 제주 성읍마을,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 전남 보성군 강골마을,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 전남 나주시 도래마을, 경북 봉화군 닭실마을, 경북 김천시 원터마을, 충남 아산시 외암마을, 강원 고성군 왕곡마을 등 모두 열 두 곳이다.
저자는 각 마을에는 그곳을 만든 이들의 정신성(사상)이 녹아있다고 말한다. 그는 답사를 통해 그 사상을 좇고 어떻게 공간과 장소로 구체화했는지를 찾아낸다. 공간에 숨어있는 옛 조상들의 생각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저자는 연신 감탄을 토해낸다. 가령 보통 마을에서는 종가(宗家)가 뒷산 기슭으로 바짝 물러나 있는데 반해 옻골마을의 최씨 종가 뒤에는 많은 터가 남겨져 있다. 종가의 터를 줄여 많은 가옥을 짓기보다 최소한의 베이스캠프만 남겨두고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자손을 내보내 광역 네트워크를 형성하고자 한 사회지도층의 의도가 숨어있다.
거주공간과 주변환경을 엮어 풍수적인 해석을 내린 흔적도 있다. 낙안읍성, 하회마을, 왕곡마을 등은 떠다니는 배의 형상을 닮은 행주형(行舟形) 마을인데 이곳에서는 마을공간에 우물을 파는 것을 금지했다. 배에 구멍을 뚫으면 물이 새어 들어 가라앉을까 하는 우려에서 나온 얘기다.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에 한옥 여럿 채가 있는 전통마을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눈 여겨 보면 모양새도, 유래도, 그 안에 담긴 이야기도 다 다르다. 예로 성읍의 안할망당과 하회의 삼신당은 같은 신당(神堂)이지만 공간 구성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왜구의 잦은 침입과 잦은 흉년으로 제주 성읍마을에는 토속신앙이 유달리 발달했다. 이 때문에 곳곳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무속신앙의 장소 '할망당'이 있다. 안할망당이 이 같은 배경으로 마당을 거느린 아담한 건물이라면 삼신당은 마을신의 집으로 하회 별신굿을 치르는 장소다. 당목인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정사각형에 가까운 마당을 가진 삼신당은 양반과 평민을 한데 어우른 마을 중심으로서의 공간이 잘 드러난다.
저자는 정신성이 배어 있는 전통마을 공간을 읽어내며 우리도 앞으로의 주거공간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전한다. 불편하고 촌스럽다고 치부했던 전통마을을 저자의 세밀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다 보면, 먼 훗날 후손들이 지금 이 시대의 주거공간을 어떻게 읽어내 줄지 문득 걱정이 든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