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지난 10년간 정치적 라이벌이었다. 두 사람이 정치에 입문하기까지의 이력과 정치성향은 사뭇 달랐지만 2002년 각각 한나라당 소속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면서 경쟁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2007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주자로 경쟁하게 되었지만, 경선 전에 손 대표가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정면 대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7년 대선에서 이대통령이 당선되고 손 대표가 통합민주당의 대표로 선출되면서 다시 경쟁구도에 들어섰으며, 이 대통령 집권 초기인 2008년 5월 두 사람은 여야의 영수로서 회동했다. 그러나 큰 입장차이만 확인하고 성과 없이 헤어진 바 있다.
진일보한 만남
이런 두 사람이 지난 27일 청와대에서 3년 만에 두 번째 여야 영수회담을 가졌다. 이번 회담이 성사된 것은 두 사람의 정치적 이해가 일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야당대표와 만나 민생현안을 논의하는 것이 임기후반기 국정주도권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고, 분당 재보선 승리로 당내 입지가 탄탄해진 손 대표도 야권 내 위상을 높이고 민생을 챙기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기대했을 것이다.
이번 회담의 성과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와 알맹이 없는 회동이라는 비판이 엇갈리지만, 주요 일간지에서 회담내용을 톱기사로 다루지 않은 것을 보면 언론은 정치적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는 않는 듯하다. 그러나 합의문도 없이 입장의 차이만 확인했던 3년 전의 영수 회담과 비교하면, 이번 회담은 양측이 일부 의제에 대해 합의를 했고, 합의문도 발표하였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공은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모처럼 성사된 이번 회담이 일회성 정치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장기간의 여야 대치정국을 풀고 대화와 상생의 정치를 살리는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자면 두 사람 모두 이번 회담에서 합의한 정책현안에 대한 후속조치에 적극 나서서 여야간 대화의 창구를 넓히고 그 동안 쌓인 불신의 벽을 허무는 지속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회담이 2년 9개월 만에 열렸다는 점은 그 동안 정부여당이 국정운영에 있어 야당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증거다. 대통령은 이제라도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여기는 진정성을 갖고 야당 대표와의 대화를 정례화하기를 기대한다. 손 대표도 복잡한 민주당내 사정과 대여강경 분위기가 정치적 부담이겠지만, 당의 노선과 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이견이 없는 민생현안에 관해서는 여당과의 대화와 협력에 적극 나서는 유연한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정부여당에 대한 발목잡기에만 몰두하는 정당으로 비쳐지고 있는 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변화시키고, 두 자리 수로 벌어진 한나라당과의 정당지지율 격차도 줄일 수 있다. 나아가 손 대표 자신도 책임 있는 야당지도자로서 국민들로부터 새롭게 인정받고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서 지지기반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당청협력 게을러선 안 돼
이 대통령이 임기후반 국정주도권의 급속한 약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여당과의 소통과 정책조율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최근 한나라당과 청와대 사이에는 각종 정책을 둘러싼 불협화음과 혼선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영수회담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사전 조율 없이 반값 등록금 정책을 발표한 것은 영수회담의 의미도 반감시켰지만, 대통령의 여당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졌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다음 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새 지도부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 우선순위를 둘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당청갈등이 심화될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이 대통령으로서는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야당과의 소통뿐만 아니라 여당 새 지도부와의 긴밀한 당청협력과 정책조율에도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세아문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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