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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80세 제왕의 불후의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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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80세 제왕의 불후의 명작

입력
2011.06.2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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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인의 연주 뿐 아니라 관심 가는 연주회라면 전혀 모르는 연주자의 공연도 자주 찾는 편이다. 게다가 CD로는 한 곡을 여러 사람의 연주로, 한 사람이 같은 곡을 다른 년도에 다시 출반하면 따로 구입해 듣는다. 비전공자인 경우 같은 곡이 어떻게 연주자에 따라 다르냐고 묻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그건 당연하며 연주자의 나이에 따라 그의 음악성이 달라지는 것 또한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요즘 푹 빠져 있는 곡이 있는데 바로 카라얀(Herbert Von Karayan 1908~89)의 브람스 교향곡 음반이다. 신장 160cm 단신의 카리스마 넘치는 카라얀은 역사상 최고의 지휘자이며,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4세에 음악공부를 시작하여 반년 만에 공식 피아노 연주회를 가졌다. 18세에 빈 공과대학에 입학하였으나 3년 만에 중퇴하고, 손가락에 이상이 생긴 이후에 빈 대학교 지휘과를 입학, 지휘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의 천재적 재능과 노력은 하늘이 절대적으로 내려준 행운인 양 수많은 유수 오케스트라, 오페라단, 음악제 감독, 가극장 총감독, 예술고문 등 모든 것을 20여년 만에 성공적으로 치루게 된다. 1955년 당시 최고의 지휘자였던 푸르트 벵글러의 후임으로 지명되어 베를린 필하모니 지휘자로서의 길을 걷는다. 그의 나이 46세로 세계적 오케스트라를 이끌기에는 너무나 젊은 수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젊은 패기와 열정, 그리고 유래 없는 카리스마로 세상을 뜰 때까지 여기서 세계최고 예술의 산실을 이루게 된다.

그의 예술적 특징은 매우 단순하고 명쾌하며 알기 쉽게 연주한다는 점이다. 낙천주의가 선천적으로 배어있고 음악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의 구성력이 그의 강한 카리스마와 어우러져 독일 베를린 필하모니를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변모 시켰다. 진솔한 음악을 추구하는 참된 의미의 지휘자에 독일 국민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열광했다. 그의 음악에 대한 집념은 가히 초인적 에너지 그 자체였다. 평생 셀 수 없을 정도의 연주와 예술사업, 즉 LP, CD 등의 1,000여종이 넘는 음반을 전 세계에 판매하여 그들의 예술문화 가치성을 입증시켰다. 지금 유통되는 CD 사이즈가 원래는 지금보다 훨씬 작은 크기로 나올 예정이었으나 카라얀의 첫 출반 CD용량에 맞춰 현재 크기로 결정이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그는 브람스 교향곡 전곡(총 4곡) 음반을 네 번이나 냈다. 59년을 시작으로 60년대, 70년대, 그리고 그가 죽기 1년 전인 88년 마지막 녹음으로 마감하였다. 그의 젊은 시절 음악은 오케스트라의 기계적인 조직력과 카리스마로 청중을 압도한다. 치밀하고 철저한 완벽함으로 음악의 제왕임을 입증해 보인다. 필자 또한 테크닉적으로 뛰어난 연주를 최고로 꼽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녹음 횟수를 거듭할수록 그의 날카로운 카리스마는 서서히 무뎌짐을 알 수 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의 마지막 녹음된 음반에서 소름 돋는 전율을 느낀다. 80세가 된 음악의 제왕도, 여느 나이든 훌륭한 연주자들이 그랬듯이 완벽한 일체감보다는 간혹 감지되는 허술함에서 여유로움과 인간적인 호소력으로 더욱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가 걸어 온 인생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갈수록 클래식 음악이 대중음악만큼은 아니더라도 음악회와 음반으로 홍수를 이루고 있다. 요즘 트렌드에 맞춰 빨리 준비하고 횟수만 많이 하는 공연이 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의례적이고 허식적인 연주보다 나이 든 연주가의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은 노력, 열정, 그리고 삶의 연륜이 묻어나는 묵은 연주가 좋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들리는 게 전부가 아님을 느끼게 해주는 그들의 의미 있는 메시지가 숭고하면서도 아름답다.

송재광 이화여대 음대 교수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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