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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의 신조어로 본 한국, 한국인] <18> 하의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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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의 신조어로 본 한국, 한국인] <18> 하의실종

입력
2011.06.28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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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후반부터 한국 가요계에서는 소녀시대, 씨스타, 포미닛, 티아라, 카라, 시크릿 같은 걸 그룹 혹은 소녀 그룹들이 댄스음악과 독특한 의상으로 대중적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런 여성 아이돌 그룹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해 치열하게 경쟁을 하다 보니 의상에서도 일종의 노출경쟁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하의 실종'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하의실종이란 하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짧은 치마나 핫팬츠를 입은 여성들의 의상을 빗대는 신조어다. 즉, 하반신 노출이 심하다보니 마치 하의를 입지 않아 그것이 실종된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하의+실종'의 합성어이다.

애초에 하의실종이라는 신조어에는 과도한 노출경쟁을 벌이는 여성 연예인에게 보내는 누리꾼들의 경고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즉, 그것은 성공과 승리를 위해 스스로를 성적인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행태에 대해 경고하는 목소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매도 자꾸 맞다보면 습관이 되고 관성까지 생기는 법이어서, 언론과 대중 속에서 하의실종이라는 신조어가 크게 유행하면서부터는 하의실종을 은근히 장려하는 분위기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과거에는 과도한 노출을 하는 일부 연예인들을 보면 낯이 뜨거워져서 '해도 해도 너무 한다'고 비판을 했다면, 요즘에는 '누가 누가 노출을 더 많이 하나'라는 경쟁이라도 부추기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도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뉴스를 보면 제목에 '하의실종'이란 말이 등장하는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그 말에 솔깃해져서 기사를 클릭하는 누리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베이비 페이스(동안)를 가진 여자 연예인이 몸매도 글래머라는 뜻을 가진, 베이비 페이스와 글래머를 조합한 신조어인 베이글녀라는 신조어가 누리꾼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여성 연예인들의 하의실종을 은근히 즐기면서 부추기는 대중심리란 어떤 것일까? 한국처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한 사회에서는, 외모가 예쁜 여성은 단순한 미적 동경과 숭배의 대상만이 아니라 사회적 성공의 상징이기도 하다. 속된 말로 예쁜 연예인은 주로 재벌가나 권력자 같은 성공한 남자들의 결혼대상으로서, 그들의 몫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팽배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돈 없고 힘없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여성 연예인들의 노출은 그들에게 일종의 대리만족을 주고 상대적 박탈감을 일시적으로나마 완화시켜주는 최면효과를 가진다. 즉, 여성 연예인들의 노출은 보통 사람들에게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효과라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연예인들을 연기력이나 노래실력 등으로 평가하지 않고 외모나 개런티 등으로 평가하는 사회풍조는 위험하다. 그것은 연예인으로서의 자존감이나 정체성에 상처를 줌으로써 궁극적으로 자기의 삶을 허무하거나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만들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하의실종이 젊은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하나의 사회적 압력이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하의실종자 대열에 합류하고 있으며, 일부 여성들은 하의실종 패션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정상적인 사회집단에서 낙오되고 있는 것만 같은 소외감까지 느끼게 되었다. 언론들부터가 하의실종 같은 신조어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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