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한 일간지 주최 뮤지컬 시상식에서 극본상('서편제')을 받은 극작가 겸 연출가 조광화씨가 27일 뒤늦게 수상 거부 의사를 밝혀 뮤지컬계가 시끄럽다. 시상식을 주최한 신문에 지난 24일 '한국 뮤지컬계의 대본 수준이 낮다'는 내용의 칼럼이 실린 뒤라 더 그렇다. 시상식의 프로듀서였던 기자는 이 칼럼에서 조씨의 실명을 거론하며 "극본상 선정 과정은 뛰어난 대본보다 결정적 하자가 있는 것을 먼저 추리는 최악이 아닌 차악을 택하는 과정이었다"고 썼다. 조씨는 이에 "수상자로서 몹시 부끄럽고 당혹스럽다"며 시상식 후 미처 챙겨오지 못한 상패와 곧 지급될 상금을 수령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국내에서 뮤지컬 시상식은 단 두 개뿐. 그만큼 상을 받기가 쉽지 않을 텐데, 시상식에 참석했던 수상자가 뒤늦게 상을 거부하는 사태는 예삿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뮤지컬계 관계자들은 조씨의 돌출 행동을 하나같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주최측이 심사 과정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을 기사로 명문화함으로써 창작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것은 물론 상의 권위도 스스로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이 상의 본심 심사위원이었던 A씨는 "전반적으로 극본상 후보작이 아쉽다는 말은 있었지만 차악이니 최악이니 하는 표현은 없었고 '서편제'를 수상작으로 꼽는 데도 이견이 없었다"고 전했다. "칼럼 내용이 사실이라면 '수상자 없음'으로 처리하면 되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뮤지컬계에서는 문제의 칼럼이 시상식 당시 조씨의 언행에 대한 보복 아니냐는 해석까지 떠돈다. 조씨는 얼마 전 빚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편제'제작자의 장례 때 입었다는 검은 양복 차림으로 시상식에 참석했다. 또 작심한 듯 "한국 뮤지컬은 선진 외국의 식민지가 되고 있다. 방송과 가요, 영화계 등 이웃에서 벌어진 연이은 자살 소식이 우리 뮤지컬계에서 재현되지 않도록 한국적 뮤지컬을 구현할 인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비장한 말로 수상 소감을 대신해 흥겨워야 할 시상식 분위기를 일순 숙연하게 만들었다.
정확한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상을 줘 놓고 "최악이 아닌 차악을 택했다"고 뒷말을 하는 것은 시상식 주최자로서 예의가 아니다. 이 소동에서 빚어진 뒷공론이 열악한 환경에서 악전고투하는 창작자들의 의욕을 꺾지 않을까 걱정된다.
김소연 문화부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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